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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자연 약탈하고 짓밟은 인간 횡포에 대한 지구의 저항

코로나19는 자연 약탈하고 짓밟은 인간 횡포에 대한 지구의 저항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 맞아 만난 강우일 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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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6 발행 [1579호]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에게 코로나19는 발열, 기침, 호흡곤란, 폐렴을 동반하는 단순한 신종 호흡기 감염증이 아니다. 그에게 코로나19는 “피조물을 약탈하고 멸종시킨 인간 횡포에 대해 생태계가 들어 올린 저항의 깃발”로 정의된다.

강 주교는 지난 5월 1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 기념 미사에서 인간의 회심과 속죄의 징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민 전체가 예민한 생태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우리 누이이자 공동의 집인 지구의 미래는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2년 8월부터 18년째 제주교구장을 지내고 있는 그의 사회적 발언은 육지로 올라와 교회 밖으로 울려 퍼졌다. 4대강 개발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제주 제2공항 건설 등 사회 현안으로 어지러울 때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하느님의 선물임을 상기시켰다. 때론 분노의 목소리였지만 한결같이 차분한 힘이 넘쳤다.

강 주교는 지금 전 세계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시대적 징표’라고 진단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표현대로, “인간이 지구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자연을 마구잡이로 약탈하고 짓밟은 결과”라는 것이다.

강 주교는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것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소극적인 방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역 차원을 넘어서 기후위기에 근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개인적이고 대사회적인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하느님이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금은 최소한 가정에서 하는 건 아무도 손을 못 대고 있다”면서 “가정이 신앙생활의 못자리인 만큼 가정에서 신앙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을 맞아, 8월 28일 제주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강 주교를 만났다. 그는 2016년 3월부터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녹색평론」을 비롯한 환경 관련 서적, 환경과 생태를 다룬 스크랩 된 신문 기사들이 놓여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생활이 적응이 좀 되셨는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비대면 생활은 전혀 익숙지 않아요. 공식 모임에서는 항상 마스크를 쓰는데 버겁네요. 사람이 자기 얼굴을 감춘다는 게 사람으로서 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저질러온 생태계 파괴와 직결되는 현상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소극적인 방법이지요. 복음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가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지금 이 시기에 지구 전체를 위기에 빠트리는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에너지 과소비가 기후위기를 낳고, 그 기후위기가 생태계 파괴를 가져오는 맥락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계획부터 세워야 합니다.

‘한국판 그린 뉴딜 정책’에는 탄소를 줄이려는 대책은 없고, 기존의 석탄 화석연료를 덜 쓰는 방법으로 산업의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기계를 또 만들어서 에너지를 줄여보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소극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저도 작년부터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꿨고, 될 수 있는 대로 자동차 대신 버스를 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귀기도 좋고요.(웃음)”



비대면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지요.

“인간은 만남과 교류 속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면 인간은 행복하게 존재할 수 없어요. 교도소에서도 가장 지독한 형벌이 독방에 혼자 갇히는 겁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사랑 안에 함께 모여 하나가 돼서 힘을 얻었거든요. 그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고요.

육신을 가지고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전자상 화면’으로 사람을 만나면 불행해지죠. 사목자와 신자들은 전염을 피하면서도 만남과 소통을 강구해야겠죠.”



코로나 시대에도 소공동체 모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소공동체 모임은 가정에서 주변 사람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이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안 됩니다.

소공동체가 안 된다면 기본 세포인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이 기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정이 신앙생활의 못자리인 만큼, 가정에서 신앙의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가정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자들은 신앙의 활력을 잃은 모습입니다.

“성당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게 답답하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그동안 인류가 자연에 대해 오만방자하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 코로나 사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요.

단순히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새로운 시대를 근원적으로 대응해나가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살아갈 수 있는 노력을 취해야 합니다. 필요할 땐 두려워하지 말고, 옳은 건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용기를 가져야죠.

시대의 징표를 알아들으려는 노력과 함께 교종님의 교서 「찬미받으소서」와 「사랑하는 아마존」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사태 참고 도서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신앙과 환경보다는 부동산과 주식에 쏠려 있습니다.

“88올림픽 이후, 경제가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등장했습니다. ‘부자 되세요’가 상식적인 인사가 되었고, 지금은 너무 돈에 휘말려서 산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사람이 아닙니까? 복음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예수님은 ‘부자 되라’는 말씀을 안 하십니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시지요. 예수님은 부에 대해 신경질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부 자체가 나쁠 건 없죠. 그러나 돈을 많이 갖게 되면, 없는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을 갖기 힘들어지고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하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돈의 속성이거든요.

예수님이 부자를 꾸짖으시는 하나의 핵심적인 근거는 자기만을 지키기 위해 남을 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언론에선 보수적인 한국 교회에서 강 주교님을 비롯한 몇몇 지도자만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저도 잘 모르겠고요. 그때그때 프란치스코 교종님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듯이, 저도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복음적인 시각에서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온 것이죠. 그것뿐입니다.”



제주교구장으로 사목하시면서 느낀 보람과 아쉬움이 있으신가요.

“서울 한복판 명동에서 몇십 년을 먼지 구더기 속에서 살다가 낙원 같은 제주에 와서 너무 감사했고, 좋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제주는 제주 나름의 많은 역사적인 아픔과 쓰라림이 있었고 그런 삶을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가슴 속을 헤아리면서 저도 아팠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쑥스러움이 많고, 수줍음을 타고, 얼른 다가가지를 못하는데 한번 가까워지면 속정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본래 담도 없고, 대문도 없이 평화롭게 살았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그 경계심이 시간과 함께 축적됐어요.

저도 대한민국 역사의 그늘을 여기에 와서 알게 되고, 그런 제주도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은혜롭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로 여행 오는 전국의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은.

“제주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는 건 좋은데, 마스크는 꼭 쓰시라고 당부드리고 싶고요. 제주에 오셔서 신부님, 수녀님들 만나고 싶으시면 두려워하지 말고 찾아가셔서 대화를 나누시면 좋겠어요. 저를 찾으셔도 좋고요.(웃음)

놀다만 가지 마시고 4ㆍ3평화기념관에 들러서 제주의 역사도 공부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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