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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쓰고 계십니다”

[사도직현장에서]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쓰고 계십니다”

김재덕 신부( 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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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6 발행 [1579호]
▲ 김재덕 신부


로마에서 유학 중에 로마를 방문하신 교구장 주교님을 모시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장관님과 교구장 두 분께서 대화하시는 동안 저는 집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좀 있으신 신부님 한 분이 제게 오셔서 “신부님, 필요한 것 없으세요”라며 온화한 미소와 함께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습니다. 주교님과 함께 다니다 보니 오늘 한 대도 못 피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는 건물 밖 흡연 장소까지 안내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비흡연자라 저만 혼자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주교님 모시고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죠?” “아닙니다. 기쁘게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신부님은 여기서 일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예, 몇 년째 일하고 있지요.” “그럼 신부님, 엄마 안 보고 싶으세요? 가족들도 엄청 보고 싶겠네요.” 신부님께서는 미소로 대답하셨습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방금 저를 안내해 준 신부님께서 주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복도 끝에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갑자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부님은 인류복음화성 차관 사비오 혼 대주교님이셨습니다.

“저기, 주교님이세요?” “네,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쓰고 계시네요.” “주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주교님이신 줄도 모르고 큰 결례를 했습니다. 저희 주교님께는 이르지 말아 주세요.” “신부님, 무슨 말씀이세요. 신부님께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동안 저에게 ‘엄마’ 보고 싶지 않느냐고, 가족들은 잘 지내느냐고 물어봐 준 사람이 신부님이 처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신자들에게 사제의 권위를 앞세우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주교님의 이 말씀이 종종 생각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제로 쓰고 계실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저를 한 명의 형제로 받아 주셨던 주교님의 모습처럼, 저 또한 교우들을 사랑할 자격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김재덕 신부(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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