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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6.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6.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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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발행 [1578호]


우리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도회는 수사님들, 관상회 수녀님들, 그리고 내가 속한 활동회 수녀님들이 하나의 나무에 세 가지처럼 한 가족을 이룬 공동체다.

이번 지면에 소개하고자 하는 분은 관상회 소속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이시다. 나와 같은 한국인인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은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맑은 호수와 수려한 경치의 평화로운 수녀원에 사셨다. 그곳에서 몇 분의 수녀님들과 함께 충실한 기도 생활 안에 기쁘게 살고 계셨다. 내가 사는 베르사유가 도시여서 수녀님이 계신 곳으로 개인 피정과 휴식을 겸해 가끔 가곤 했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 알콩달콩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시간 가는 걸 잊곤 했다. 어떤 때엔 웃음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이 그리 우습고, 신이 났던지.

수녀님은 사랑 실천에 적극적이셨다. 내가 방문해 있는 동안이면 수녀님은 점심과 저녁 식사를 꼭 내 숙소까지 신바람 나게 날라다 주셨다. 숙소가 수녀원 주방과 그리 멀지 않아 “내 밥은 내가 찾아오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기꺼이 식판을 들고 미소를 띤 채 찾아오신다. 이걸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이라 여기면서 정성스레 만들어준 음식을 즐겁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때는 3년 전인 2017년 8월. 원장 수녀님이 급하게 나에게 다가오시는데 매우 침통해 보였다. 눈빛을 보니 무언가 차마 전달하기 어려워하는 표정이셨다. 곧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가 들려왔다.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께서 정원에서 풀을 깎는 기계를 운전하시다가 경사 아래로 떨어지셨는데, 글쎄 그 커다란 기계에 눌려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어요.” “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계속 내 귀를 의심하면서 원장 수녀님께 “한국인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라고요?” 하고 거듭 확인했다. 수녀님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두 다리가 고무가 된 것처럼 흐늘흐늘해졌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곁에 있던 수녀님들도 무거운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가 슬픔 속에도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의 생전 모습을 이야기하며 수녀님을 기억했다. 수녀님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며, 매우 솔직한 성격이었다. 특히 애덕 실천이 각별한 수녀님이었다. 동료애와 함께 수녀원 가꾸기와 살림에 늘 적극적이셨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수녀님의 나이는 당시 48세에 불과했다.

나도 큰 키는 아니지만, 나보다 더 작고 마른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은 수녀원 정원을 가꾸기 위해 그렇게나 크고 무거운 잔디 깎는 기계를 조종하셨다. 수녀님의 노력으로 인해 수녀원은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주변 모든 사람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수녀님. 그런 수녀님의 사랑과 노고를 생각하면 내 머릿속은 다시 어지러워진다. 수녀님은 하늘나라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던 것이다. 큰 사랑을 나눈 분의 빈자리는 더 큰 상실을 준다. 그러나 그 사랑은 우리의 가슴에 항상 간직돼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타오르는 불꽃처럼 열성적으로 주님 위해 살다가 하늘나라로 급히 가신 엠마누엘 마리아 수녀님! 아직 이 세상에 사는 우리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세요. 수녀님, 사랑합니다!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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