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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1.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요”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1.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요”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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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발행 [1573호]


이 환자는 어떻게 머나먼 방글라데시에서 이곳 프랑스로 왔을까. 꿈을 찾아왔을 그의 얼굴은 그러나 지금 윤기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다. 마치 한겨울 언덕 위에 쓸쓸히 서 있는 메마른 나무를 보는듯하다. 하지만 그 메마른 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나를 보고 금세 환한 웃음을 보인다.

“저는 한국인 수녀예요.”

“어, 안녕하세요!”

아니, 반가운 기색도 모자라 한국말로 화답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방글라데시인 환자도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넨 덕에 우리의 낯선 만남은 이내 화기애애해졌다.

“2002년 한국에 갔어요. 2년 동안 세탁소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갔었어요.”

그는 그때 익힌 한국어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뒤 건강을 회복한 그는 2013년 친구들과 프랑스에 왔고, 이곳에서도 세탁소에서 다림질하는 일로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고 했다. 결혼은 으레 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이들이 있느냐”고 물으니, “마누라와 9살 아들이 고국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순간 방글라데시인의 입에서 ‘마누라’라는 순우리말을 듣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갑자기 나의 웃음보가 터진 이유를 아는 듯 보였다. 불과 2년 살았다지만, 그가 한국말 표현을 곧잘 하는 덕에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고, 서툰 표현이라도 그가 나에게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들이 가득한 병실에 환자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 대화가 이어진 것이다.

그도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나 보다. 친구들과 한국 식당에서 불고기와 김치를 참으로 맛있게 먹은 이야기도 곁들인다. 휴대폰을 꺼내 마누라와 아이 사진도 보여주는 그의 눈빛은 가족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동안 그도 고통스러운 병을 잊은 듯 보였다.

이 방글라데시 환자는 8개월 전 위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병실을 이곳저곳 옮기다 지금은 말기 암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또 지금은 얼마나 쓸쓸할까.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요. 그곳에서 다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싶어요.”

한참이나 밝게 이야기하던 그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해 보였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노무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환자가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그를 고용했던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녔던 것으로 느껴진다. 조국을 떠나 힘겨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이 작은 체구의 외국인에게 분명 용기와 위로를 주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봐도 그는 무척 성실히 살았을 것 같았고, 마음이 메마르지 않은, 참으로 정겨운 인간성을 지닌 착한 사람이다. 세탁소 주인은 내가 받은 인상대로 이 사람의 그 점을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방글라데시인이 다시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이 순수하고도 성실한 이가 바라는 희망을 이루길 기도한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주님께 복을 받고 자기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으리라. 이들이 그분을 찾는 이들의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이들의 세대 야곱이라네.”(시편 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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