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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7)토마스 콜레의 ‘로마 제국의 멸망’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7)토마스 콜레의 ‘로마 제국의 멸망’

몰락의 불길로 뒤덮인 로마, 사람들 비명과 절규가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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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발행 [1570호]
▲ 토마스 콜레, ‘로마 제국의 멸망’. 캔버스에 유화(100×161㎝), 1836년, New York Gallery of Fine Arts 소장.




서로마 제국의 멸망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약해진 황제의 통치력으로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을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도록 유언했다. 서로마 제국은 이때 만들어졌다.

서로마 제국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와 아프리카 북부, 북쪽으로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그리고 본토인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반도였으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게르마니아 방위선이 무너져 국경지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서로마 제국은 호노리우스 치세에 이르러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과 같은 크고 작은 야만족의 계속되는 공격을 받았고, 훈족의 아틸라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내부적으로는 군인 황제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훌륭한 장수들이 많이 암살을 당하는 바람에 야만족들을 막아줄 장수가 부족하게 되고, 이에 이탈하는 병사들이 많아져 결국 이민족들을 용병으로 쓰기 시작했다. 특히 게르만 용병들에게는 이민족의 군대라는 지위보다는 제국의 정규군으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5~9세기에 걸쳐 지중해를 향한 이민족들의 방대한 이동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5세기에 접어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발흥한 흉노족은 몽골 지역에서부터 서진하여 로마 제국의 변방까지 밀고 들어 왔다. 날렵한 기마병들을 처음 본 제국의 용병들은 기마병들에 밀려 제국의 영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이민족들이 서진한 이유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정치적인 이유를 들기도 하고, 최근의 헌팅턴 같은 교수는 기후 변화를 들기도 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제국의 변방에 있던 게르만, 슬라브, 반달족, 동고트, 서고트 등의 여러 민족은 동-서 로마 제국의 방대한 영토에서 무수한 전쟁을 일으키며 어떤 민족은 로마까지 밀고 들어오기도 했다.

476년 게르만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는 결국 서로마 제국을 장악하고,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강제로 폐위시키기에 이르렀다. 서로마 제국은 이렇게 멸망하였다.



서로마 멸망의 원인

서로마 제국 멸망 당시 조시무스는 “로마 제국이 망한 건 전통적으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당시 교회의 교부들은 즉각 반발했고, 설득력 있는 글과 설교로 맞섰다. 로마 제국 말기의 정치적인 무능과 사회-문화에 걸친 방대한 도덕적 해이를 그리스도교의 탓으로 돌리는 데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다.

476년 오도아케르에 의한 로마 황제의 폐위가 있기 오래전부터 로마는 거의 1세기가 넘게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았고, 쇠망의 길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410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함락되고 약탈당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신국론(De civitate Dei)」을 써서, 제국의 쇠퇴 원인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기 이전, 이교 시대에도 멸망을 예견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갈리아족과 다키아족의 침입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고, 네로 황제의 로마 방화와 같은 내부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화정 시대 말기에도 호라티우스는 “로마인들이 날이 갈수록 사악해져 간다”고 한탄했고, 네로 황제 시절, 세네카는 “이제 로마 제국은 병들어 남은 것은 사멸밖에 없다”고 했음을 상기시켰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화정이 무너지면서부터, 그러니까 제국이 설립되면서부터 멸망은 예견된 일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도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이교도들 때문에 제국이 망했다고 했다.

5세기 초, 그리스도인 작가 살비아누스 역시 「신정론(De gubernatione Dei)」에서 로마 제국 쇠망의 원인은 죄악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로마 사회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고 했다.



연작 ‘제국의 과정’

소개하는 그림은 ‘제국의 과정’이라는 제목의 5개 연작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작품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토마스 콜레(Thomas Cole, 1801~1848)의 1833~1836년 작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꽃을 피운 예술 운동 ‘허드슨 강 학파’의 설립자 겸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다. 허드슨 강 학파는 콜레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주제의 폭이 방대하지만, 낭만주의와 자연주의를 고수하며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건축가의 꿈’, ‘인생 항해’‘,성경과 종교에 관한 ‘에덴동산’, ‘십자가와 세계에 관한 연구 시리즈’,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시작’, ‘귀환’, ‘과거’, ‘제국의 과정 시리즈’와 같은 것이 그 예다. 1829년 콜레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바 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로마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대표작인 ‘건축가의 꿈’도 그렇고, 소개하는 ‘제국의 과정’도 그렇다.

이 그림은 ‘제국의 과정’이라는 큰 주제 안에 ‘야만국가’, ‘목가국가 혹은 목자국가’, ‘제국의 완성’, ‘제국의 멸망’, ‘황폐’라는 5개 연작 중 하나다. 네 번째 해당하는 ‘제국의 멸망’은 앞에 있는 세 번째 ‘제국의 완성’과 뒤에 있는 다섯 번째 ‘황폐’와 같은 연장선에 있어 하나만 따로 떼어 언급하기가 곤란해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기로 한다.

우선 세 작품의 원근법과 시선이 거의 동일하다. 강을 중심에 놓고 제국이 세워지고, 멸망하고, 황폐화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 분위기도 ‘제국의 완성’에는 해가 뜨고, ‘멸망’에는 폭풍이 몰려오고, ‘황폐’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똑같은 풍경을 각기 다른 시대로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다.

강변에는 로마로 추정되는 도시가 있고, 그것이 성장하고 쇠퇴한다는 내용이다. 감정은 강물의 움직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른쪽 배경에 있는 절벽과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큰 바위가 세 작품이 같은 도시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같은 도시의 흥망성쇠를 말해주고 있다.



작품 속으로

이제 작품 ‘파괴(Destruction)’, 곧 ‘로마 제국의 멸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세 번째, 다섯 번째 그림과 비교하면 극적이고 혼란스런 엄청난 행위들이 집약되어 있다. 벌어지는 행위는 도시를 약탈하고 파괴한다. 강은 정면에 있고 물의 움직임은 거세다. 적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며 도시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도시를 불태우고, 시민들을 폭행하고 죽인다. 강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던져지고, 승리의 행렬을 잇던 다리는 끊어졌다. 사람들은 다리의 난간에 매달려 있다. 다리 위, 건물 위, 회랑의 기둥 위, 어느 곳 할 것 없이 인파로 가득하고, 모두 아우성이다. 사람들의 절규와 탄식이 캔버스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다. 기둥은 깨지고, 오른쪽의 큰 건물 뒤에서 폭발할 듯 터져 나오는 불길은 곧 도시를 집어삼킬 것 같다. 바로 앞 오른쪽에는 그간 숭배해 오던 영웅의 동상이 몸통만 보르게제 검투사 같은 자세로 서 있다.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하려는 듯, 우람한 체구가 처량하기만 하다. 그림은 455년 반달족에 의한 로마 약탈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콜레는 기번과 달리, 로마 제국의 원인을 수많은 내부적인 원인에서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외부적인 원인, 이민족의 침입에서 찾았던 것이다.



토마스 콜레, ‘로마 제국의 멸망’. 캔버스에 유화(100×161cm), 1836년, New York Gallery of Fine Arts 소장.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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