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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당신에게 사진을 권하는 이유

[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당신에게 사진을 권하는 이유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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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발행 [1570호]



오래전 한 외딴 섬 바닷가 선착장에서 새벽을 보낸 적이 있다.

먼바다에는 조각배들이 몇 척 떠 있었고 밤하늘에는 별과 달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빛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목줄기를 타고 날리던 바람의 시원함도 더없이 훈훈했던 밤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너무 좋았고 이대로 잠을 이루어 외면하기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아마 그때 들었던 생각이 “아! 내가 살아있구나”였지 싶다. 온몸의 감각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 보였다. 지금도 그날 밤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와 엇비슷한 경험 한두 번쯤은 아마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흔히들 사진은 카메라가 이루어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를 기반으로 해 우리 자신의 ‘몸’이 구현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몸이 대상이 되는 사람, 사물, 공간 등과 마주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한 육체가 아닌, 온몸의 오감을 통해 대상과의 일체감을 이루는 환희를 경험한 분들은 충분히 공감할 일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진은 홀로 완성될 수 없는 행위의 산물이다. 기본적으로 대상과 ‘나’의 대면이라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데다 이것의 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의 귀결을 이루게 된다. 나 혼자만의 잔치가 아니라 어떤 대상이든 둘 이상의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 구현되는 사진의 특성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면서도 사실 ‘나’와 ‘대상’이라는 두 존재성으로 인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자신의 몸을 들여 무언가를 바라보는 창문과도 같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느낌을 담아내는 수많은 ‘창’들 중에서 사진은 몸을 들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풍경이든, 어느 타인의 삶이든 하다못해 군침 돋는 음식 앞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어느 무엇이든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바로 그 앞에 들여서는 행위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한다.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달아오르는 경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 바로 ‘그것’ 앞에 서지 않는 한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이지 않은가. 사실 이것은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많은 사람에게 사진을 통해 ‘자신’을 느껴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

물리적 대면을 넘어 대상에 대한 앎의 과정을 통해 자기를 느끼는 행위. 자기 밖의 어떤 특정한 대상을 향하는 듯 보이는 ‘사진찍기’는 사실 자신을 대상으로 여기는 자기 ‘안’으로의 여정이나 다름이 없다. 자신의 내면에 드리워진 감정이 그 대상인 것이다. 자신의 눈 바깥에 있는 사물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문으로서 사진의 역할을 달리 생각해 보자. 기록과 보존의 도구라는 단순한 역할을 넘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랑, 상처, 기쁨, 좌절, 욕구, 기대, 우울, 고독 등의 다양한 심리적 상황과 직면함으로써 사진은 그 ‘쓰임’의 여지를 확장시킬 수 있다.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의 상처와 대면하는 용기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살피고 어루만지면서 넓게는 자신의 성장을 돕는 도구로서 사진은 그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다. 오늘보다 더 행복한 당신의 하루를 사진과 더불어 찾아보시길 권유한다.



▲ 임종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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