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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 풀린 다산, 조선의 복음 전래에 관한 회상록 남기다

귀양 풀린 다산, 조선의 복음 전래에 관한 회상록 남기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 정약용의 「조선복음전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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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발행 [1567호]
▲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에 세워져 있는 다블뤼 주교 성인상. 가톨릭평화신문 DB

▲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 초고와 표지.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조선천주교회사」 초기 기술의 근거가 된 책

이 책이 계속 궁금했다. 정말 다산이 「조선복음전래사」란 제목의 책을 썼을까? 아니 쓸 수 있었을까? 사실 「조선복음전래사」는 원책의 제목이 아니라, 다블뤼(1818~1866) 신부가 「조선 순교자 비망기(Notes de Mgr. Daveluy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e)」에서 초기 천주교회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록을 정약용이 지은 「조선에 복음이 들어온 것에 관한 회상록(des mmoire sur l’introduction de l’Evangile en Core)」에서 인용했다고 말한 데서 나온 명칭이다. 「조선복음전래사」는 이 불어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한 것이고, 원뜻은 ‘조선에서의 복음 전래에 관한 비망기’에 가깝다. 다블뤼는 1856년에서 1862년 사이에 정약용의 이 책을 수집해 집필의 기초 자료로 활용했다.

다산은 강진 시절 백련사 주지였던 아암(兒菴) 혜장(惠藏)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 인연으로 「대둔사지」와 「만덕사지」 같은 불교 사찰 역사를 정리한 일이 있다. 정리하다 보니 자신이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사찰의 옛 기록이 신뢰도에 문제가 많다는 판단을 했다. 이에 다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불교 관련 역사 정보를 정교하게 편집해서 「대동선교고(大東禪敎攷)」를 저술했다. 그리고는 이를 「대둔사지」 끝에 별책으로 붙였다. 「대동선교고」는 말하자면 ‘동국불교전래사’ 쯤에 해당하는 책이다. 내 생각에 다산이 썼다는 「조선복음전래사」는 그 원제목이 「대동서교고(大東西敎攷)」 또는 「서교동전고(西敎東傳攷)」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산은 불교를 믿지 않았지만 「대동선교고」를 썼다. 하지만 「조선복음전래사」는 만년에 되찾은 신앙에 바탕을 둔 소명이 담긴 글이었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특사로 귀양이 풀린 정약용 요한은 자기 죄를 오랫동안 진심으로 통회하였고, 그의 모범적인 열심과 극기로 교우들을 위로하였으며 매우 감화시키는 죽음을 맞았다. 그는 여러 종교 서적을 남겼고, 특히 복음이 조선에 들어온 것에 대한 수기를 남겼는데 이 책에서 지금까지 기록한 사실들은 대부분 그의 수기에 의한 것이다”라고 썼다.



간략하지만 훌륭하다

글 속의 ‘지금까지’란, 1장 한역서의 조선 전래로부터 신유박해에 이르는 시기의 내용을 가리킨다. 1784년 이승훈의 입교에서 1801년 신유년 박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다산이 정리한 수기에 근거했다고 달레는 말했다. 달레의 책은 다블뤼 주교의 꼼꼼한 수기를 정리한 것이다. 그 바탕이 된 비망기에서 다블뤼는 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조선 천주교의 기원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실(史實)을 끌어낸 자료들은 앞으로 자주 언급하게 될 정약용에 의해 수집된 것이다. 그의 세례명은 요한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거의 모든 천주교 사건에 참여하였다. 천주교의 주요 지도자들은 다 그의 친척이거나 친구였다. 학문과 관직으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배교하는 나약함을 보였으나 1801년의 유배를 면하지는 못하였다. 여러 해가 지나 유배에서 풀려난 그는 열심히 천주교를 신봉하고, 신심과 큰 극기의 모든 실천에 장기간 전념하였으며, 아주 신자답게 사망하였다. 또한, 그는 몇 가지 종교 저술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전래사를 옮기고 연결시키는데 그쳤다. 불행히도 그의 전래사는 너무 간략하다. 하지만 아주 잘 된 것이다.”(다블뤼, 「비망기」 제 5쪽, 번역 최석우 신부, 「정약용과 천주교의 관계」에서 인용)

또 1858년 11월 7일에 달레가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보고 서한에서도 “나는 정약용에 대해 한마디 첨가하고자 합니다. 그의 증언은 아주 큰 무게가 있어 보입니다. 학식 있고 청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할 때 일어난 모든 사실에 참여하였고, 그가 아주 잘 아는 사실들과 인물들에 관해 적어 놓았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그 자신의 배교와 그의 형제, 친척, 친지들의 배교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며, 이런 사실이 그의 이야기에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나는 그의 저서에서 다른 구전과 모순되는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책은 그의 집에 숨겨져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오늘날에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중략) 그의 이야기는 간략하고 정확합니다. 그는 후에 다시 교우의 본분을 실천하고, 그의 전래사를 저술한 다음 선종하였습니다.”

양은 많지 않지만, 대단히 정확하다. 다른 경로로 정리된 구전들과 어긋남이 없고,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도 숨김없이 적었다. 이것이 이 책에 대한 달레의 평가였다. 그러니까 초기 천주교 이입에서 신유박해까지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다산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그 밖의 다른 전문(傳聞)으로 살을 보태서 정리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복음전래사」의 집필이 생의 마감을 앞둔 시점에 이루어졌음도 밝혔다.



쇠사슬 허리띠를 차고 묵상에 잠기다


다블뤼와 달레의 기술은 대단히 구체적이고 확신에 차 있어서, 「조선복음전래사」가 실제 다산이 짓지도 않은 허구의 책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당시 조선 교회로서는 배교자로 교회를 떠났던 다산을 굳이 천주교 신자로 만들기 위해 그가 쓰지도 않은 책을 썼다고 우길 이유가 없다.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을 천주교회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도 다산이 처음이었다. 홍유한 관련 기록은 권철신 등을 통해 직접 듣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다산은 이 책을 언제 썼을까? 강진 유배에서 18년 만에 돌아온 3년 뒤인 1822년에 다산은 회갑을 맞아 이른바 ‘비전(秘傳) 6전(傳)’을 썼다. 초기 천주교 신앙과 관련되어 죽거나 유배된 이가환, 이기양, 권철신, 오석충, 정약전 등 5인의 묘지명과 자신의 자찬묘지명이 그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산은 정계 복귀의 꿈을 완전히 접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1823년 6월과 9월에는 그의 이름이 승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후손에게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이 6편의 전기는 해당 인물들이 비록 천주교도로 몰려 죽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굳이 비밀로 할 것을 당부했다면, 이들 글에 대한 생각이 나중에 바뀌었거나, 공연한 구설을 만들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다산은 70세 이후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천주교 이입기의 역사를 정리하는 중요한 증언을 남겼다. 그것이 다블뤼의 비망기와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의 앞부분을 구성하는 골격 원고가 되었다. 이같은 다산의 변화에 대해 달레는 “귀양이 풀려 돌아온 뒤, 정약용 요한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교회의 모든 본분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1801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입으로 배반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쳐 세상과 떨어져 살며, 거의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몇몇 친구들밖에는 만나지 않았다. 그는 자주 대재(大齋)를 지키고, 그 밖에 여러 가지 극기를 고행하며 몹시 아픈 쇠사슬 허리띠를 만들어 차고 한 번도 그것을 끌러 놓지 않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묵상하였다”고 적고 있다.



은폐와 검열

다산이 회갑 당시에 쓴 6편의 전기는 꼼꼼한 자기 검열을 거친 글이었다. 천주교와 관련된 결정적인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삭제했다. 같은 내용에 대한 6편 속의 기술과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 속의 설명을 비교해 보면, 검열을 거쳐 삭제된 부분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 초기 교회사에서 다산 자신이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서도 다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가성직 제도 아래 10인의 신부 명단이나 명례방 집회 적발 당시 관련자 명단에서 다산은 자신의 이름을 쏙 빼버렸다. 다블뤼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썼기 때문에 초기 교회사에서 다산의 비중과 역할은 상당 부분 은폐되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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