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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유대와 사랑의 길

고독,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유대와 사랑의 길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44. 머튼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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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0 발행 [1563호]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토마스 머튼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이다. 홀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던 예수님의 고독,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던 예수님의 그 고독,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신 예수님의 그 고독과 하나 되었을 때, 머튼은 하느님의 고독과 만날 수 있었다. 이 하느님 고독과의 만남은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의 고독과도 만나게 된다. 1960년 「논쟁점」이라는 저서에서 머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기봉헌

“항상 홀로 있는 이 내면의 ‘나’는 항상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이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저 자신의 고독은 다른 모든 사람의 고독과 하느님의 고독과 만납니다…. 이러한 ‘나’는 제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살게 됩니다.”

결국, 머튼에게 고독은 예수님과의 깊은 영적 유대와 사랑의 일치를 위한 자기 비움의 길이었다. 자신을 하느님 앞에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죄, 가난 등)을 하느님 앞에 말없이 내어 보여 드리는 것이다. 이 고독의 시간을 통해 머튼은 인간의 시간 안에서 하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머튼의 고독은 초자연을 향한 갈망이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자기봉헌이었다. 무엇을 얻는 방법을 넘어 고독은 하느님 영과의 깊은 친교와 일치 안에서 홀로 있지만 홀로 있지 않은 영적 충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모든 고독이 참된 고독은 아니다”라고 머튼은 말한다. 저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에서 머튼은 참된 고독과 거짓 고독을 구분하고 있다. 쉽게 말해, 거짓 고독은 자신의 오만과 결점을 감추기 위해 고독한 척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영적인 공허를 메꾸기 위해 사람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척한다. 자신을 고립시키며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른 고상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아무도 자신의 내면에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잠그고 도피한다.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며 사랑을 소유하려 들고 집착한다. 반면 참된 고독은 하느님 중심적이며 사랑으로 나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겸손하고 사심이 없다. 그의 고독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하느님의 사랑에 머물기 위한 시간이다. 참된 고독 속에 있는 이들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정화해 줄 수 있으며 영적인 충만함 속에서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처럼 머튼에게 있어서 참된 고독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고독이다. 그는 「요나의 표징」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고독과 침묵은 나에게 형제들이 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형제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1966년 일기에서는 고독과 사랑의 관계를 더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고독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에 열려 있어


“오늘 「고독 속의 명상」 일본어판 머리글로 쓴 고독에 대한 단상을 다시 고쳐 썼다. 글 내용이 조금 깊이 있어 보인다. 한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과 자유로 열리지 않은 고독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과 고독은 진실로 성숙과 자유로 나아가는 바탕이다. 고독을 위한 고독고독 이외의 것은 모두 배제한 고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진정한 고독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고독은 아무것도,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 사랑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머튼은 참된 고독에 들어간 이는 더 이상 욕망이 없기에 그 고독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서 쓰라린 괴로움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다. 또한, 쓰라린 괴로움이 정화되었기에 그 영혼은 안전하게 홀로 있을 수 있다. 참된 고독 속에 사는 이는 고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나 증오를 자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고독을 위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설령 자신이 고독한 사막으로의 이끌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도시 속에 남아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 영혼은 모든 곳에서 홀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머튼의 사랑을 향해 열린 고독은 참된 고독을 모르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자유의 외침이 되었다. 1958년 11월 10일 성 요한 23세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머튼은 말했다. “관상가로서 저는 고독 안으로 저 자신을 가둬 두는 것이 이제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가난한 세상이 제가 고독 안에 있어야 할 올바른 장소입니다.” 또한 「머튼의 단상」에서 그는 고독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깨어난 이는 세상에 대한 책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저는 이제 저의 고독이 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진정 다른 이들에게 속한 것임을 이해하고, 단지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고독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머튼은 고독 속에서 깊은 영적인 체험으로 새로 태어났고, 이로 말미암아 1960년대에는 다른 이들의 고독을 위해 살았고, 이는 진정한 내적 고독과 세상과의 올바른 관계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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