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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네로에 맞선 거장 철학자, 죽음 앞에서도 당당

폭군 네로에 맞선 거장 철학자, 죽음 앞에서도 당당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1) 루카 조르다노의 ‘세네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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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0 발행 [1563호]
▲ 루카 조르다노, ‘세네카의 죽음’(1684년), 캔버스에 유화(155×188cm), 루브르박물관, 파리.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의 한 장면’이라는 주제로 교회 역사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 되었던 한 장면에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가능한 연대기 순으로 하겠지만 때로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맞추어 과거의 그 순간을 꺼내 보기도 하겠다. 역사는 흐르는 것이라, 흘러온 만큼 또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발전을 향해 무한 질주하던 현 인류에게 ‘공동의 집’ 지구가 힘들다고, 그만 달리라고 제동을 건 사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편해진 여러 가지 상황이 그대로 생활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날마다 늘어나는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와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이름이 아닌, 숫자로 확인하는 일상에서 생사의 경계에 선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정표가 되어주는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이것은 또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의 정점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주목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화가 루카 조르다노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의 ‘세네카의 죽음’이다. 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초연함과 그의 주변에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제자들의 움직임이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루카 조르다노는 바로크 시대 나폴리학파의 대표 화가다. 알려진바,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피렌체이고 포스트-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로마라면 1600년대 바로크의 중심지는 나폴리였다. 카라바조, 존 로렌조 베르니니는 당시 나폴리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Luca Fapresto”(루카 파프레스토), 즉 ‘루카는 빨리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아무리 큰 제단화라도 하루 이틀을 넘기지 않을 만큼 신속하게 잘 그렸다고 한다. 라파엘로, 티치아노, 베로네세,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는 물론 카라바조까지 훌륭한 선배들의 영향을 여러모로 받아 화사하면서도 묵직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다. 주제도 성경과 신화, 역사적인 사건 등 가리지 않고 화폭에 담았다.

그는 3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나폴리, 로마, 피렌체, 마드리드, 파리 등 곳곳에 있다. 루브르에만도 ‘세네카의 죽음’ 외에 ‘동정녀의 결혼식’(1688), ‘목동들의 경배’(1688),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등 9점이 있다.



스토아학파의 철인(哲人)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4~A.D.65)는 키케로(Cicero, B.C.106~43)와 함께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1세기 중엽 대표적인 스토아학파 철인(哲人)으로 폭군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로마의 정계로 진출하여 제국의 말단 공무원부터 원로원의 의원이 될 때까지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의 황제를 경험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다. 그는 연설을 잘했고, 훌륭한 연설로 사람을 움직이는 자를 황제들은 싫어했다. 폭군 칼리굴라는 그의 목숨을 노렸고, 황제가 먼저 살해당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조카딸과 간통했다는 혐의로 그를 코르시카로 추방했다. 하지만 그는 거칠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연과학과 철학에 더욱 정진했다.

8년 만에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에 의해 복권되어, 54년, 네로가 16살에 황제가 되자, 그는 황제의 스승이며 로마의 최고 지성인으로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부상하였다. 세네카가 네로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 로마 제국은 근래 없는 평화의 시기를 맞았다. 그 시기에 국가 재정과 법률 개혁을 단행했고, 문화적으로도 라틴 문학이 꽃을 피웠다. 네로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선정을 베풀어 주인이 노예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했다. 그 시기 네로도 시와 음악에 자질을 보이던 밝은 소년이었다. 나름대로 시도 잘 썼다고 한다. 훗날 로마를 불태운 것이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 네로를 변하게 한 것은 어머니가 정치적인 맞수가 되면서부터였다. 59년, 21살이 된 네로는 존속살해라는 비극을 시작으로 폭군이 되어갔다. 스승의 충고는 거슬렸다. 세네카는 ‘관용’이 로마 황제의 자질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하지만 네로의 광기(狂氣)는 64년의 로마 방화와 그리스도인 박해로 이어졌고, 세네카는 황제 암살 모의에 동조했다. 네로 역시 가까이 있는 세네카보다 멀리 있는 세네카가 더 두려웠던 참이다. 연설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 암살 모의가 발각되고, 세네카는 황제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때 세네카의 나이 69세였다.

세네카는 철학에서 흔한 주제인 존재론이나 인식론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토아 철학은 금욕적인 삶과 이성을 발휘하여 자연과 세계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살아온 시대가 힘겨웠던 만큼 세네카는 주어져 버린 인간의 삶과 도덕에 천착했다. “인생살이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많은 실용서를 내놓았다. 「서간집」, 「대화」 등의 저서와 「분노에 대하여」, 「행복한 삶에 대하여」,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등의 논술서 등이다. 그의 저서들은 훗날 단테와 ‘제2의 세네카’로 불린 몽테뉴를 비롯하여 루소, 흄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화를 다스리는 법과 덕에 관한 것, 죽음에 관한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종교관과 도덕철학은 네로 이후 계속되는 제국의 박해 속에서 많은 호교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최후의 순간에도 시대의 진리 전해

이제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빛은 현자를 비추고 있다. 그가 중심이다. 그는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에 치열하게 살았고 그 속에서 사색했다. 그렇기에 평소 가르치던 대로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원로원으로부터 ‘로마의 적’이라는 선언을 받고 비 오는 새벽에 신하의 집으로 도망갔다가 죽은, 전혀 황제답지 못했던 네로의 죽음과는 대조적이다. 배경은 시대를 반영하듯 사방이 어둡다. 어둠 속에서 제자들은 서둘러 현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스승의 허름한 몸은 영적인 힘으로 지탱되고, 그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부제가 ‘철인의 작별’이다.

배경 속 기둥은 스토아철학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왼쪽 끝, 붉은 옷을 입고 공책에 뭔가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사람 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황제의 자결 명령서를 들고 온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담담한 표정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노쇠한 철인의 죽음 앞에서도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려는 듯 젊은 학도들의 열기가 발목 동맥을 자르고 밴드를 쥔 의사의 손에 들어간 힘과 복받치는 슬픔을 압도한다.



루카 조르다노, ‘세네카의 죽음’(1684년), 캔버스에 유화(155×188cm), 루브르박물관, 파리.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피렌체 거주)

▲ 김혜경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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