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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감사로 응하는 초대(안현모, 리디아, 동시통역가)

[신앙단상] 감사로 응하는 초대(안현모, 리디아, 동시통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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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9 발행 [1557호]



저는 늘 제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교만하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땅의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저의 매일매일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기도 중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넘어 “하느님, 갚겠습니다”를 되뇔 정도로 하느님께 빚진 마음이 큽니다. 그건 다름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양 같은 저를 그동안 몇 번씩이나 예쁜 종소리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부터가 순전히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당시엔 저희 집 다섯 식구 중 아무도 천주교 신자가 없었는데도 저 혼자 뚱딴지같이 제 발로 걸어가 성당 문을 두드렸으니까요. 사실 그때만 해도, 저는 어디 좋은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하얀 미사보는 마치 새로 받은 폼나는 교복 같았고, 교리 수업이 끝나고 신부님과 다 같이 가진 뒤풀이 자리는 마치 TV에서 보던 연예인이랑 친해진 것처럼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한참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마치 그 학교를 ‘졸업’이라도 한 듯 길 잃은 양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저를 불러들이셨습니다. 특단의 조치로 저에게 숙제를 내주신 겁니다. 천주교 잡지 「가톨릭 비타꼰」에 글을 연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저는 마치 얼떨결에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맺은 수많은 형제자매와의 고마운 인연 덕에 벌써 5년이 되도록 나오질 않고 있지요.

이후에도 하느님은 저에게 여러 번 뜻밖의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한 번은, 멀리 이탈리아까지 가서 그것이 하느님의 초대였음을 알고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시시의 성 클라라대성당에서 혼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전북 익산의 봉쇄 수녀원에서 만났던 클라라 성녀가 당신의 고향 묘소까지 찾아온 저를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꼭 안아주었거든요. 그런 제가 어느덧 또 다른 어린양의 품을 만나 김치찌개 한 그릇 앞에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는 하느님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니, 하느님이 저에게 이제는 어디든 손잡고 같이 오라며 든든한 짝꿍까지 정해주신 셈입니다.

그러다 가장 최근에 하느님께서 저를 호출하신 곳은 바로 이곳,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서울주보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신앙 고백을 수많은 신자와 나눌 수 있는 너무나도 벅차고 영광스러운 특급 초대였지요. 물론 이번에도 저를 뻔한 곳으로 부르진 않으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저에게 배정된 3월이 전면적 미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맞물렸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며 보니, 덕분에 그동안 저의 신앙을 더욱 깊이 돌아보며 하느님께 더욱 바짝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선에서 애쓰시는 의료진과 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평범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모든 영웅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는 기도 안에 훨씬 더 많은 감사를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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