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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사회적 ‘딥스테이트’와 제3의 길(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사진단] 사회적 ‘딥스테이트’와 제3의 길(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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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 발행 [1556호]




1998년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당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핵심 두뇌’로서 ‘제3의 길’을 제안한다. 그 당시 영국 정치는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결핍되었는데, 구좌파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였고 신우파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길 원치 않았다. 이에 블레어 정부는 사회적 연대와 번영을 창출하기 위한 제3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우파의 신자유주의와 좌파의 사회민주주의를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이데올로기를 주창하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여 하나의새로운 길로 사회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제3의 길에 대한 찬반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결국 제3의 길은 갈라진 정치권과 사회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간 이른바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딥스테이트는 정치권, 군대조직, 경찰조직 등 특정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비밀리에 작업하는 제도권 세력을 의미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정권 뒤에 숨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뿐만 아니라, 딥스테이트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암암리에 조직되는 학연, 지연, 종교, 세대, 정치이데올로기 간의 사회분열과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보호하려는 행태는 이미 우리 사회에 배태된 관행이자 사회를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법칙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 내부에 뿌리내린 딥스테이트는 필요하다면 포퓰리즘과도 영합할 수 있고 때로는 대중을 동원하는 무서운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코로나19 비상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태극기 부대와 일부 개신교 간의 연계, 그리고 옥중 메시지를 통해 전 대통령이 태극기와 거대 야당의 전략적 연대를 호소하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박정희 신화의 보수적 딥스테이트가 시민의 일상생활부터 정치사회까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19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로 볼 수 있는 586세대의 정권 창출과 국정 운영, 그리고 이를 비판 없이 지지하는 일부 시민 사이에 형성된 대중주의적 관계도 진보적 딥스테이트가 이미 한국 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민의 이름으로 민주적 개혁을 위한 거리의 광장정치는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회운동의 방식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딥스테이트의 조정하에 다른 집단의 정치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광장정치를 대중영합주의로 시도하는 것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일반 시민들에게 기존 보수와 진보 중 택일을 강요하며 점차 시민들이 광장정치와 민주주의 전반에 염증을 느껴 사회 통합의 기회가 사라지는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일부 언론의 가짜 뉴스까지 곁들어지면 정보의 유통 과정이 왜곡되고 광장정치는 근거 없는 묻지마 비난으로 도배된다.

이제 한국사회가 박정희 신화와 1987년 체제라는 과거의 상상적 공동체에서 모두 벗어나 제3의 길을 떠나길 희망한다. 현재와 미래의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는 과거의 프레임은 더는 한국의 미래를 통합의 길로 인도하는 방향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분단체제 극복 및 평화구축, 경제번영과 복지국가, 사회정의와 불평등 해소, 국제협력 등 해결해야 할 국가적 숙제가 산적하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선택하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과 이를 최종적으로 담아내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지금이라도 진지하고 용감하게 논의할 때이다.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과 불필요한 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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