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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요나서」로 연극하기(임주빈, 모니카, KBS 심의위원·시그니스 서울 회장)

[신앙단상] 「요나서」로 연극하기(임주빈, 모니카, KBS 심의위원·시그니스 서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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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발행 [1548호]




지난해 가을에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서울대교구 문화학교에서 ‘「요나서」로 연극하기’라는 강좌를 들은 것입니다. 요나 이야기는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연극이나 구연동화로 한 번쯤은 접해 봤다는 분이 많습니다.

이 강좌에서는 1주일에 두세 번 「요나서」를 읽는 것이 기본 과제입니다. 그리고 「요나서」에 대한 신부님의 해설 시간이 있고, 「요나서」를 읽고 각자 느낀 점을 수필이나 연극 대본으로 써서 발표합니다. 최종적으로 수강생들이 함께 짤막한 낭독극이나 연극을 만들어 종강 미사에서 발표합니다.

저는 이 수업을 통해 그동안 이야기 중심으로 피상적으로만 알던 「요나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히브리의 예언자 요나가 왜 하느님 말씀을 피해서 달아났다가 물고기 배 속에 갇히고 말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됐고, 그런 요나의 심경에 깊이 공감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가 반발했던 바로 그 하느님의 사랑, 이민족에게까지 차별 없이 베푸시려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나는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또, 내가 생각하는 공평함과 하느님이 행하시는 공평함의 간극은 왜 이렇게 큰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믿음을 멀리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며, 악한 이를 무조건 용서하는 것 또한 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야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고 사회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요나서」로 연극하기’ 수업은 하느님의 정의는 제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주님에겐 모든 피조물이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기에, 설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처벌보다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용서받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회개와 용서의 기회를 끊임없이 주십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죄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그렇게 수없이 주시는지 못마땅했습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교인들만 잘 챙겨주시면 될 것을, 못되고 얄미운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계속 관심을 기울이시고 주님 안으로 이끄시려는 것이 불만이었던 거죠.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기엔 제가 너무나 속 좁고 편협했습니다. 우리 편, 네 편 갈라서 우리 편만 사랑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편견의 눈을 거두고, 편 가르기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것만으로도 제가 ‘「요나서」로 연극하기’ 수업을 받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 다가가는 방법은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학기 문화학교에는 또 어떤 강좌들이 있을지 찬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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