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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주님의 옷’ 입은 자녀 되어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주님의 옷’ 입은 자녀 되어라

‘주님 세례 축일’과 세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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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발행 [1547호]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예수 세례’, 1541년경, 167×116㎝, 런던 국립미술관.



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1월 5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주님 세례 축일’로 지낸다. 올해 주님 세례 축일은 전례력에 따라 1월 12일이다. 이날은 주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한다. 이 축일로 성탄 축제가 막을 내리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 저녁 구유를 비롯한 모든 성탄 장식을 치운다.

주님 세례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그래서 힐라리오 성인을 비롯한 여러 교부는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세례를 통해 새로운 임무를 받은 성자로 다시 태어나셨다”고 고백한다.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주님 세례를 통해 그분 안에서 인류는 새로 시작하고 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설명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 세례 축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진실로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성령을 주신 날”이라고 했다. 가톨릭교회 신앙의 진리를 체계화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토대로 주님 세례 축일의 의미를 정리했다.



복음서는 주님의 세례를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로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루카복음 3장 1절은 요한 세례자가 세례 운동을 전개한 때는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즉위한 지 15년째 되던 해라고 밝히고 있다. 환산하면 서기 27년경이다.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청해 세례를 받으신다.

주님의 세례는 당신의 ‘비우심’을 나타낸다.(1224항) ‘비움’은 주님의 구체적인 존재 양식이다. 참 하느님이신 분이 성탄을 통해 참인간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셨다. 또 세례를 통해 죄 없으신 거룩한 분이 당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시고 비우신 것이다. 이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비움의 절정은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른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었다.

주님의 사명은 ‘죽음의 세례’로 완성된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으셔야 할 일 곧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당신이 받아야 할 ‘세례’라고 이미 말씀하셨다.(마르 10,38 참조) 이 죽음의 세례는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 수난을 겪고 죽어야 한다는 아버지 뜻을 수락하신 것이기도 하다.(536항 참조)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 2,6-8)고 고백한다.

세례를 통한 주님의 순종에 천주 성부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화답하신다. 또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어 머무르신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성령께서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자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세례를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하느님 아들로서 드러난 예수님의 공현” 사건이라고 한다.(535항)

아울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성부의 말씀은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성부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 많은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간의 죽을 운명, 비천함과 나약함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들인 그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과 닮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세례는 또한 그분께서 장차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미리 알려준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이다.(「교회헌장」 2항)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541항)

주님의 세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미소한 자들, 곧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셨다.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셨다.(마태 25,31-46 참조)

아울러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비와 함께 ‘회개’를 요구하신다. 주님께서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고자 죄인들을 위한 요한 세례자의 세례를 자청하셨듯이, 죄인인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라고 하신다.(요한 3,5)

주님의 몸인 교회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태 28,19)고 하신 주님의 명에 따라 성령 강림 때부터 지금까지 거룩한 세례를 베풀어 오고 있다. 교회의 세례는 언제나 ‘주님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결부돼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례성사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고 선포한다.(1227항 참조)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례 덕분에 우리가 ‘주님의 옷을 입은’ 새로운 창조물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난한 이의 얼굴을 한 주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고 주님 세례 축일의 의미를 설명했다.


▲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 카타콤바의 ‘주님 세례’ 도상.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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