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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보편적 국익과 전략적 평화(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사진단] 보편적 국익과 전략적 평화(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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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발행 [1541호]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가? 인류 공동의 보편적 목표로 인식되는 평화가 한국의 국익과 양립할 수 없는가? 우리의 국익을 위해 평화를 전략화할 수는 없는가? 우리는 흔히 평화와 국익은 상반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주창하는 사람은 보편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좌편향적인 집단으로, 국익을 강조하는 사람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편향적인 집단으로 쉽게 이분화하는 문화에 길들어 있다.

먼저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국익의 의미를 따져 보자. 국제정치의 전통적인 맥락에서 국익은 국가 간의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특정 국가의 국익이 확대되면 상대 국가의 국익은 축소된다는 현실주의의 산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한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파워를 기반으로 한 국익의 확장은 다른 국가의 국익과 상생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로 따지면 보편적 개념의 평화와 일국 중심의 국익이 충돌 없이 접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약 가능하다면 아마도 강대국이 평화를 시혜적으로 약소국에 베풀 경우, 또는 약소국이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보편적 평화를 가능케 한 비정상 또는 비대칭적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이 평화를 추구하는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을 하면 현실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기 일쑤다. 북한정권의 연장을 위한 퍼주기식이라 비판을 받거나 냉엄한 국제정치에 무지한 아마추어식 진보좌파의 실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익과 평화는 상호보완이 되는 전략적인 관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미 영국과 북유럽 선진공여국은 국익을 좁은 의미의 자국 중심 권력의 확장이 아닌 글로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이 확대되는 보편적 의미로 재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국제개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보편적 국익 요소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평화의 개념 또한 단순히 보편적 시각에서 그 중요성을 당연시하지 않고 한국의 국제정치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재조명하여 전략화할 수 있다.

보편적 국익과 전략적 평화의 만남은 일국 중심의 국익과 보편적 평화의 만남보다 소통의 폭이 넓어지고 건설적인 해법을 제공할 가능성이 커지며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한국 중심의 국익은 결코 한국이 추구하는 평화프로세스에 부합하지 않으며, 보편타당한 국익으로 한국의 국익의 범주를 확대할수록 국제사회의 규범과 원칙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연결될 기회 공간이 넓어진다. 이러한 보편적 국익을 기획하고 추진하기 위해서 한반도가 처한 평화구축의 장애물을 오히려 전략적 자산으로 환치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를 포함한 지구촌의 평화와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대북제재와 비핵화, 그리고 북미 간 평화협정 등,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 한반도발(發)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략화하는 것이 결국 남북한의 국익이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공공재가 될 수 있다. 전략적 평화와 보편적 국익이 한국 외교정책과 공공외교의 근간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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