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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예식을 한국 교회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연도’

정통 예식을 한국 교회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연도’

[특별기고] 연도란 무엇인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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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발행 [1538호]
▲ 왼쪽부터 「로마 예식서」, 「성교예규(聖敎禮規)」, 「텬쥬셩교례규」.



한국 천주교회 장례 문화는 ‘연도의 문화’이다. 초상이 나면 “연도 났다”고 하고 문상 때나 기일 혹은 명절에 연도를 바친다. 연도는 우리 민족의 가락에 담긴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위령 감사송1)을 노래하는 파스카의 찬가이다.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연도의 탄생과 그 구성 그리고 의의에 관해 연재함으로써 위령 성월을 맞아 연도에 대한 명료한 역사 인식과 토착화에 대한 중요성을 고취하려 한다.



연도라는 명칭에 대해

“연도란 무엇이다”고 정의한 문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舊)교우 시대 공소 회장의 직무 지침서인 1913년 「회장본문」에 위령의 날인 “추사이망일과 교우 죽은 날에 련도할 것을 힘쓸지어다”고 언급한 것이 문헌상 가장 오래됐다. 그러나 문헌이 아닌 실생활에서 연도라는 용어는 박해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적으로 연도란 넓은 의미에서 ‘연옥도문’의 준말로 ‘연옥 영혼을 돕는 기도문’이라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서 연도에 쓰인 성인 호칭 기도인 연옥도문만을 연도라고 부른다.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는 단련할 연(燃)을 쓰고 성인 호칭 기도는 계응창으로 이어지는 기도라 해서 이를 연(聯)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문헌에서도 연도를 한문으로 표기하지 않기에 두 의미가 혼재한다.



연도는 어디에 실려 있는가?

2003년 한국 주교회의는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가 편찬한 1864년 「텬쥬셩교례규」를 계승하고 현대화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상장예식」을 발행했다. 우리가 바치는 연도를 담고 있는 연도책이 바로 다블뤼 주교의 「텬쥬셩교례규」라는 것이다. 「텬쥬셩교례규」는 임종과 장례에 관한 책이며 제2권 장례 부분에 연도가 수록돼 있다.



연도는 우리의 것인가?

가톨릭대사전(한국교회사연구소 간행)에는 「텬쥬셩교례규」를 중국 천주교회의 한문본 「성교예규(聖敎禮規)」의 내용을 줄여서 단순 번역한 본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도는 중국 교회 예식서의 내용을 취사선택해 번역한 것이기에 우리의 고유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인가. 어느 부분은 선택하고 어느 부분은 왜 빼버린 것일까. 그동안 「성교예규」의 간행 연대와 간행자는 물론 실제로 이 책이 대중 사이에서 활용됐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기에 연도에 관한 연구는 난항이었다.

필자는 문헌 연구를 통해 「성교예규」가 적어도 청나라 도광제 임기인 1850년 이전에 쓰여 1864년 「텬쥬셩교례규」보다 앞선 문헌임을 증명했다. 간행자는 모예 신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교회에서 「성교예규」의 활용 정도는 매우 미약했다. 현재까지도 중국에서 「성교예규」는 간행자를 알 수 없는 희귀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 연도인 「텬쥬셩교례규」는 한국에서 「상장 예식」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현대화된 반면, 중국의 「성교예규」는 왜 대중화되지 못하고 이어지지 않았는지 그 답을 찾아보겠다.



「로마 예식서」에 비춰본 중국과 한국의 연도

1614년 바오로 5세 교황은 보편 교회의 전례 통일을 위해 「로마 예식서」를 반포했다. 「로마 예식서」 에 따른 장례 예식의 규정과 기도문을 기준으로 중국과 한국의 두 문헌을 대등하게 비교하면 「텬쥬셩교례규」가 「성교예규」를 간소화해서 단순 번역한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물론 두 문헌 사이의 공통점은 있다.



중국과 한국의 연도의 공통점 유교 문화권

「로마 예식서」에서 장례 집전자는 사제인 반면 중국과 한국은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 장례 때 미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신도가 예절을 집전했다. 더욱이 「로마 예식서」는 모든 장례가 ‘성당’과 묘지에서 이뤄지는 유럽의 풍습을 바탕으로 한 예식서다. 중국과 한국에선 장례가 ‘상가(喪家)’와 묘지에서 이뤄진다.

「로마 예식서」의 장례 예식은 △위령 성무일도 △미사 △사도 예절 △하관 예식의 단계로 구성돼 있다. 즉, 로마 예식은 시신을 성당에 모신 뒤 위령 성무일도를 주야(晝夜)로 바친다. 이후 장례 미사와 사도 예절을 한 다음 시신을 묘지에 안장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시신을 모신 상가에서 문상과 염이 이뤄졌다. 이후 출관해 성당에 가서 미사하고 다시 묘지로 가는 동선이었다. 그렇다면 유럽 문화 중심의 「로마 예식서」가 유교권 두 나라의 장례예식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었을까.



「로마 예식서」의 반영도를 통해 본 우리 연도의 독립성과 창조적 재구성력

「로마 예식서」의 장례 기도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도가 위령 성무일도다. 위령 성무일도에 따르면 신자들은 성당에 있는 관 앞에서 시간대를 나눠 저녁 기도, 밤 독서 기도, 아침 기도를 바치게 돼 있다. 위령 성무일도가 라틴어로 돼 있고, 내용이 길어 신자들은 항상 예식서를 지참해야 했다. 게다가 ‘저녁→밤→아침’ 순서로 이뤄진 기도 시간을 고려할 때 위령 성무일도가 당시 유럽 사회에서도 잘 지켜졌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의 「성교예규」는 ‘망자일과경’이란 제목으로 로마의 위령 성무일도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예식서의 보급률과 한자 문맹률을 감안할 때 망자일과경의 실천 여부가 의심스럽다. 그래서 「성교예규」는 망자일과경을 바치기 힘든 경우, 예를 들어 글을 모르는 사람은 묵주기도를 대신 바치라고 했다. 글을 아는 사람은 △공심판사 △심판의 날에 △찬미경 △시편 △연옥도문 △축문 순서로 구성된 보다 단순화된 기도로 망자일과경을 대신하라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위와 같은 로마 예식의 위령 성무일도를 본문에 전혀 수록하지 않았다. 대신 신자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번갈아 가며 △시편 △찬미경 △연옥도문 △축문(마침 기도)을 끊임없이 바쳤다. 이것이 우리 연도다. 얼핏 보면 중국의 연도 중에서 두 기도문(공심판사와 심판의 날에)을 빼고 단순하게 재구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기에 한국의 연도는 「로마 예식서」의 표준 예식인 위령 성무일도를 따르지 않고 기도문을 자유롭게 취사선택한 것으로 단정 지어야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로마 예식서」의 장례 예식서 468항을 보면 긴급한 사유가 있고 시간이 없을 때는 위령 성무일도의 축문(마침 기도)만 바쳐도 전체 위령 성무일도를 대신한다고 명시돼 있다. 「로마 예식서」 역시 기본적으로 위령 성무일도를 제시하고 있지만, 예외 규정을 둔 것이다.

한국 연도의 축문 전문과 「로마 예식서」의 위령 성무일도 마침 기도를 비교한 결과 같은 기도문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우리의 「텬쥬셩교례규」는 「로마 예식서」 486항의 지침을 한국 상황에 적용해 우리 방식으로 연도를 재구성한 것이다. 자의적인 축약이나 취사선택이 아니라 「로마 예식서」를 철저하게 검토한 후 이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박해 시대라는 긴급함과 기도의 단순화를 통해 위령 성무일도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례 예식의 토착화였다. 오히려 중국의 망자일과경을 대신하는 △공심판사 △심판의 날에 △찬미경 △시편 △연옥도문 △축문을 바치는 지침에서 마침 기도로서의 「성교예규」 축문은 「로마 예식서」의 위령 성무일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성교예규」가 「로마 예식서」의 위령 성무일도의 마침 기도 생략불가 지침(486항)에 어긋나는 자의적 구성인 것이다.



※연도와 성교예규에 대한 더 많은 연구 자료와 이를 주제로 2019년 10월 열린 가톨릭전례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은 가톨릭전례학회(031-853-7713)로 문의하면 된다.





▲ 허윤석 신부



허윤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이며,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과 의정부교구 상장례학교장을 역임했다. 2014년 ‘1614년 로마예식서에 비추어본 「천주성교예규(1864)」의 장례에 관한 고찰’로 가톨릭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전례학회 학술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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