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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신앙 역사를 순례하다] <4·끝> 체코 성 비투스 대성당·승리의 성모 성당

[동유럽 신앙 역사를 순례하다] <4·끝> 체코 성 비투스 대성당·승리의 성모 성당

아픈 역사에도 빛나는 신앙 보물들과 아기 예수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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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발행 [1537호]
▲ 체코 프라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경. 중세 시대를 옮겨놓은 듯 고풍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현대인들을 통째로 수백 년 전 과거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다. 아니면 중세를 그대로 구현해놓은 거대 박물관에 왔다고 해야 할까. 1000년 건축물과 근대 조각상들이 세계인을 반기는 체코 수도 프라하의 풍경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오색빛깔 상점들이 오밀조밀 어깨를 마주하며 늘어선 프라하 도심. 융단처럼 반질반질한 돌바닥으로 된 좁디좁은 골목길은 연중 ‘사람 정체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프라하는 여행객 천국이다. 상점 사이사이 오래된 성당과 수도원을 순례하다 보면 붉은 석양 아래로 멋진 야경이 프라하 절경의 2부를 시작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시가지 광장 한편에서 체코 흑맥주를 들이키면 중세의 향취마저 함께 빨려들어 온다. 프라하 성과 카를교의 불빛을 절묘하게 반사하고 있는 블타바 강이 체코가 이번 순례의 종착지임을 잔잔히 일러주는 듯했다.



자유의 도시 체코 프라하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작은 나라 체코 인구는 1000만 정도. 과거 국교 그리스도교가 왕족과 백성을 믿음의 삶으로 이끌었지만, 오늘날 체코의 가톨릭 신자 수는 전체 인구의 30%도 채 안 된다. 신성로마제국 시절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나치당, 소련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체코는 500년 넘게 식민 통치 속에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다행인 것은 오랜 침탈과 폭압의 역사 속에도 체코의 중세 건축물과 경관은 대부분 피해를 면했다. 종교적으로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외쳤던 15세기 얀 후스가 당시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다 화형당하기도 했고, 1618년에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회가 대결한 ‘30년 전쟁’을 겪었다.

1945년 공산 정권 치하에서 교회 재산을 몰수당한 뒤 1989년 진정한 자유를 되찾기까지 체코는 종교 자유와 사회 민주화를 향한 저항의 세월을 보냈다. 1968년 민주주의 혁명 ‘프라하의 봄’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민주화를 불러온 비폭력 저항 ‘벨벳 혁명’의 진원지가 프라하다. 여러 역사적 내홍 속에서 오늘날 체코인들은 종교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며 유럽에서도 무신론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체코의 상징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

체코의 복음화는 10세기쯤 이뤄졌다. 보헤미아 공작 벤체슬라오(903~929) 성인이 ‘보헤미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이를 상징하는 ‘프라하 성’은 도심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비롯한 성당 3곳과 수도원, 궁전으로 이뤄진 역대 체코 왕가의 공간이었던 프라하 성은 오늘날 성당, 수도원을 제외한 궁전 건물은 대통령 관저로 쓰이고 있다.

프라하 성 중심에 우뚝 선 성 비투스 대성당은 1344년 착공해 무려 600여 년 뒤인 1929년 완공됐다. 그 덕에 성당은 16~17세기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엄청난 순례 인파를 따라 들어간 대성당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나 다름없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이 섬세한 손길로 조각한 제단과 조각, 보석과 도금으로 장식된 경당을 따라 성인들의 생애를 표현한 성화들이 순례객을 맞는다. 고개를 조금 들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이자, 체코의 국민 화가였던 알폰스 무하의 대형 유리화 작품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에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다. 불륜이 의심되던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캐내려던 벤체슬라오 4세의 말을 듣지 않고, 고해의 비밀을 유지하다 끝내 카를교에서 순교한 성 요한 네포묵 신부의 은관도 있다. 성전 출구 쪽 벽면에 걸린 3만여 개 색유리 조각으로 만든 지름 10m 장미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무지갯빛이 성전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 성비투스 대성당 내 대형 유리화 걸작들이 눈에 띈다. 작품은 체코의 국민 화가 알폰스 무하가 제작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프라하의 아기 예수 신심

프라하 성과 멀지 않은 곳에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으로 유명한 ‘승리의 성모 성당’이 있다. 1624년 완공돼 승리의 성모님께 봉헌됐다. 이곳은 작고 순수한 모습의 ‘아기 예수’ 영성이 발원하는 곳이다.

아기 예수상에 얽힌 기적은 16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일어났다. 한 수도원에서 빗질을 하던 요셉 수사에게 어느 날 한 아이가 나타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성모송을 바쳐달라”고 청했던 것. 그런데 그 아이가 기도문의 “태중의 아들 예수”가 자신이라고 밝히고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이후 천사의 무리에 둘러싸인 아이가 다시 나타나 “밀랍으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달라”고 했고, 요셉 수사는 아기 예수상을 제작했다. 이후 아기 예수상은 스페인과 보헤미아 귀족 가문 사이 혼인으로 체코로 옮겨졌는데, 1631년 색슨족의 프라하 침입 때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는 수모에도 아기 예수는 다시 나타나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다시금 승리의 성모 성당에 모셔져 오늘에 이르게 됐다.

아기 예수 기적과 그를 향한 공경은 날로 널리 퍼졌다. 승리의 성모 성당을 관할하는 프라하 가르멜회 수사들은 아기 예수의 지향에 따라, 성당에 기부된 봉헌금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학교를 설립하고, 빈곤 가정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아기 예수상을 경배하고자 지난해에만 45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곳에서 만난 가르멜회 프라하 수도원장 파벨 폴라 신부는 “예수님의 작고 어린 모습을 통해 순례객들이 우리를 위해 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16세기 기적을 통해 나타난 아기 예수님을 형상화해 제작된 아기 예수상. 체코 프라하 도심 승리의 성모성당에 모셔져 있다.


프라하(체코)=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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