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모 심은 논에 물이 철철 들어가는 그 소리가 제일 좋아유”

“모 심은 논에 물이 철철 들어가는 그 소리가 제일 좋아유”

할아버지와 ‘태웅농장’ 운영하는 고등학생 농부 한태웅(요한 사도)군

Home > 기획특집 > 일반기사
2019.10.06 발행 [1533호]
▲ 8년차 ‘소년 농부’ 한태웅군은 대농의 꿈을 이루고, 농민들에게 힘이 되는 가사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는 농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소작을 늘려서 잘된 데도 있는데, 태풍에 쓰러진 곳도 있어 걱정이에유. 작년에는 쌀값이 올랐는데, 올해는 또 어떻게 되려나….”

또래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고 입시 준비에 매달리는 동안 논에 물을 대고, 소와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고교생 농부가 있다. 옷차림은 편안한 몸빼바지에 장화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서 조부모와 논 4000평, 밭 3000평을 일구고 있는 한태웅(요한 사도, 17, 수원교구 미리내본당)군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해 ‘소년 농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한태웅군에게 농부의 삶과 신앙을 물려준 할아버지 한영운(베드로)씨와 할머니 이영순(마리아)씨.


기어 다닐 때부터 논과 밭은 놀이터·염소는 친구

“농사일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모 심어 놓은 논에 물이 철철 들어가는 그 소리가 제일 좋아유. 친구들이랑 놀아야 하는데 돼지 쫓고 고라니 쫓고 외롭기도 하지만, 요즘같이 벼에 나락이 많이 달리고 노래졌을 때, 논둑에 있는 무성한 풀을 예초기로 깎고 나면 뿌듯해유.”

태웅군이 할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태웅농장에는 소 16마리와 염소 40마리, 닭 30마리가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소와 염소 먹이를 주고, 논밭에 들렀다 학교에 가면 수업시간에 안 졸릴 수가 없다.

태웅군을 농부로 키운 건 8할이 할아버지(한영운 베드로, 74)ㆍ할머니(이영순 마리아, 67)였다. 태어난 지 8개월부터 바쁜 부모를 대신해 조부모 손에서 컸다. 기어 다닐 때부터 논과 밭은 놀이터였고, 소와 염소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관광버스를 타고 동네여행을 갔어유. 지금은 불법이지만, 관광버스에 ‘뽕짝 메들리’가 나오면 어른들이 끼워주셔서 같이 춤도 추고유. 그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친구 같은 존재였어유.”

태웅군의 꿈은 ‘대농, 농민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 농촌 가수가 되는 것’이다. 농부들에게 노래가 힘이 된다는 걸 어려서부터 봐왔다.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농사지은 ‘태웅미(米)’ 5㎏을 선물하고, 애창곡 ‘흙에 살리라’ 한 소절을 구성지게 뽑아냈다.

태웅군은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베푸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할머니ㆍ할아버지에게 농부의 삶을 물려받으면서 신앙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벼를 베고 나면 방아를 찧습니다. 우리가 먹을 건 남겨놔야 하는데, 다 나눠주셔서 저희도 지금 사 먹고 있어유.”

모를 심다가 미사 시간이 되면 성당에 끌고 가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복장이 더러워서 성당에 가기가 좀 그럴 때가 있거든유. 성당에 안 가면 되게 혼났는데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해유. 헌금을 낼 적에 봉투에 ‘많이 내는 자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쓰여 있어서 가끔 많이 냈는데, 그땐 또 할머니한테 혼나유. 학생이 뭘 그렇게 많이 내냐고요.”

▲ 한태웅군이 매일 쓰는 감사일기. 그의 감사일기에는 농부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하다.



농부들이 농사 안 지으면 그때부터 쌀값은 금값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농사는 하늘이 해주는 것”이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해줬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의미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농업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올곧게 이겨내는 마음도 심어줬다. 농업인의 자부심이다.

“어디 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하찮게 봅니다. 제가 농사짓는 모습을 유튜브나 방송으로 보시면서 농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유. 지금이야 사람들이 쌀이 많아 버리지만, 몇십 년 후에 우리나라 농부들이 농사를 안 지으면 수입을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쌀값은 수입하는 나라에서 부르는 게 값이에유.”

그가 농부의 길을 걷는 데 가족의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농부가 되겠다고 했는데, 가족들은 경운기도 못 타게 하고, 할아버지도 못 따라다니게 말렸다. 그렇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외가의 영향으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담도 좋은 그에게 농사일 그만두고, 방송 쪽으로 진출하라고 조언하는 어른도 있다. 그만큼 농사가 힘들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벼 수확을 일주일 앞두고, 태풍이 와서 꼿꼿이 서 있던 벼들이 다 누워 썩어 버렸다.

“벼는 3일만 쓰러져 있어도 싹이 올라오거든요. 쓰러지면 벼를 밀 때 다 못 걷어 올려요. 벼가 밟히는 모습을 볼 때 제일 힘들었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동네 몇 분이 다 그러셔서, 그날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가족들은 힘들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태웅군의 지지자가 됐다.

“나이 어린 손주 놈이 파스를 붙인 걸 보면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어유. 제가 고집이 세 가지고…. 요즘은 잘 때 ‘아휴’ ‘아휴’ 아프다고 하면 들은 척도 안 하구 주무세유.”

태웅군은 용돈을 받지 않는다. 염소 팔고 소 판 돈을 통장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친구들은 사회생활에 먼저 뛰어든 태웅군을 부러워한다. 같이 농사를 해보자고 하면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낸다.

“농사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거에유. 하지만 일을 하는 날이 더 많고유. 그렇지만 속은 제일 편하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어 아주 좋습니다. 대신 할아버지가 상사에유.”




콤바인 사서 연로한 어르신 농사일 돕고 싶어

요즘 성당에 가서 “콤바인 좀 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동네에 콤바인이 한 대도 없다. 중고라도 사서 연로한 어르신들의 농사일을 돕고 싶다. 태웅군은 충남 아산에 있는 외할아버지댁에 트랙터를 끌고 가 밭도 갈아드리고 싶다고 했다. 트랙터나 경운기를 실을 트럭을 빌려야 하는데, 아직 여건이 안 된다. 평소 어른들에게 효도하겠다는 말을 즐겨하는 태웅군은 “소소하게 먹을 거 사 와서 즐겁게 해드리는 게 효도인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의 효도 목표는 안마의자를 사 드리는 것이다.

태웅군은 “성당에 안 다녔다면 지금처럼 안 됐을 것”이라며 “맨날 기도하니까 하느님이 해주시는 거 같아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의 방 문에는 ‘열심 사는 겨!’가 써 붙어 있었고, 책상에는 감사일기가 올려져 있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