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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자상한 도시(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시사진단] 자상한 도시(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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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발행 [1533호]



캐나다 에드먼턴 시는 몇 해 전부터 ‘안녕하세요?(Hello, How are you?)’ 캠페인을 시작했다. 도시에 살면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시민이 18%, 다섯 명에 한 명꼴이라는 조사 결과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낯선 이웃들이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함께 식사해요(Hello, Let’s eat!)’ 프로그램을 비롯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누구나 다가와 말 거는 ‘친구 의자(buddy bench)’를 시내 곳곳에 설치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연결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도시정책은 점점 더 자상해지고 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광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보면 색다른 계단이 눈에 띈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에 다른 재질의 띠가 보인다. 계단 중간의 평평한 계단참과 만나는 계단들도 마찬가지로 띠를 두르고 있다. 왜 이런 표시를 해두었을까? 이유가 있다. 어르신들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시력이 나빠져 계단을 잘못 볼 수 있다. 내려가는 계단을 평지로 알고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고, 올라가는 계단을 알아보지 못하면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 계단참과 만나는 곳에 띠를 두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보도 위 주차를 막거나 혹여 있을지 모를 보도 침범 사고 때 자동차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하는 울타리 가드펜스가 때로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로막는 눈가리개 노릇을 할 수도 있다. 키가 큰 성인들은 가드펜스 위로 상체의 모습이 보여 상관없지만, 가드펜스 정도의 키를 가진 어린아이들은 가려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가드펜스를 설치할 때 펜스 뒤에 서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보이도록 주의를 기울여 디자인해야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도시 곳곳에 이런 자상한 배려가 있는지 없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도시에는 건강한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다. 약자들도 함께 살아간다. 어르신들처럼 걷는 게 불편한 사람들도 있고,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도 있다. 색맹이나 색약을 비롯한 저시력인들과 임산부,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어린이들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할 약자들이다.

그러하니 도시 설계는 약자들의 눈높이에서 해야 한다. 강자들만 살아갈 수 있고 약자들은 걸어 다닐 수도 없는 곳이라면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우리 도시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 말 것이다.

약자들도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단체장과 공무원, 전문가, 당사자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시민 모두가 살피고 함께 고치며 바꿔야 한다. 내 입장이 아닌 네 입장에 서보는 것, 지금이 아닌 먼 훗날 노인이 된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도시인지 점검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잡고 도시를 산책해 보자. 아장아장 걷는 조카 손을 잡고 길을 걸어보자. 그럼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걸 아는 순간, 당신은 이미 자상한 도시설계가, 존경받아 마땅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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