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3)고통을 나눌 수 있을까?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3)고통을 나눌 수 있을까?

Home > 사목영성 > 김용은 수녀의 살다 보면
2019.10.06 발행 [1533호]
▲ 나의 고통은 누군가에게 덜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고통받는 그 사람 곁에 함께있어줄 뿐이다. CNS 자료 사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나?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내 수도 가족과 진심으로 고통을 나누며 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같이 살던 수녀가 세상을 떠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고 사는 나를 보면서 섬뜩할 때도 있다.

내 손가락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티끌만 들어가도 잠을 설친다. 그러나 옆방 수녀가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누워 있어도 잠을 잔다. 누군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도 밥을 참 잘도 먹는다. 가뭄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아프리카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나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수녀인 내가 ‘지독하게 내 중심으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어느 날 Z가 요즘 따라 많이 외롭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얼굴에 화상을 입고 성형수술을 수도 없이 해왔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포기하고 살았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게다가 Z의 엄마가 우울증까지 와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엄마를 만나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거 같고 욱하는 성격에 화까지 잘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짜증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엄마를 대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외롭단다. “머리로는 이해해요.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 그래서 남편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면 잘 들어주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외롭다고 한다.

그렇구나. 분신과도 같은 엄마라는 사람의 고통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간에도 넘나들 수 없는 강줄기가 흐르나 보다. 그러니 아무리 평생을 모든 것 비우고 살겠다고 모인 수도 공동체라 하더라도 고통을 나눌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가끔 우리 수녀들이 ‘이게 가족 공동체야?’ 하며 한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것이 가족 공동체인지도. 누구나 함께 살다 보면 불편하고 밉기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는다. 어쩌면 함께 살기에 더 기대하면서 더 불편하고, 더 사랑하면서 더 요구하고, 더 의지하면서 더 실망하며 사나 보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증상은 어떻게 표현해보겠지만 내 마음속 깊이 들어차 있는 복잡하고 촘촘한 고통의 패턴은 나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참 많으니까. 그래서 쉽게 말하곤 한다. ‘넌 몰라. 내가 겪는 고통을….” 오랫동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살아온 어머니의 고통,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고통을 바라보는 딸의 고통, 그 고통을 들어주어야 하는 남편의 고통. 각자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숨겨진 고통의 그릇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그릇은 아무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때론 나조차도. 그것이 얼마나 크고 깊고 복잡하고 오묘한지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던가. 어쩌면 우리네 삶 자체가 한없이 넓은 고통의 바다 위에서 둥실둥실 떠 있는 것인지도. 확실한 것은 거기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다 그 바다에서 산다. 그러니 누군가 나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다만 함께할 뿐이다. ‘함께’라는 것이 나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덜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고통받는 그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 마음으로. 진심으로. 그러니 외로움은 온전히 나의 몫인 것은 당연하다.

힘겹고 아플 때 너무 애쓰지는 말자. 오히려 힘을 빼고 물 위에 나뭇잎처럼 누워 고통의 바다에 내 몸을 맡기자.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신, 단 한 분, 주님의 시선을 만끽하며. 그러다 보면 고통보다 내가 더 커지지 않을까.



성찰하기

1. 누군가 고통을 하소연할 때 설명할 수 없는 언어로 위로하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그의 곁에서 마음으로 진심으로 기도로 함께해요.

2. 고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줘요. 내가 당신이 아니니 고통의 크기도 질도 색도 모양도 깊이도 다 다르잖아요.

3.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좌절이 오기도 해요. 어쩌면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닌, 직면해야만 스스로 약해지는 실체인지도 모르겠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