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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주민으로 사는 아들의 어려움 알기에…”

“캐나다 이주민으로 사는 아들의 어려움 알기에…”

이민의 날에 만난 사람 /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 돕는 난민 활동가 유주영(에밀리아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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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발행 [1532호]
▲ 나이지리아에서 온 와추쿠 러베이트 은케치씨에게 난민 활동가 유주영씨는 친구가 아닌 가족이다.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



“은케치, 잘 지냈어요? 애들 장난감 가져왔어요. 변신로봇이에요.”

“고마워요, 에밀리! 아침에 오늘 에밀리 온다고 했더니 애들이 학교랑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했어요.”



나이지리아 난민 네 자녀의 ‘이모’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주택. 난민 지원활동가 유주영(에밀리아나, 47, 의정부교구 마두동본당)씨의 방문에 나이지리아 출신의 와추쿠 러베이트 은케치(40)씨에게서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들 가족은 유씨를 ‘에밀리’라고 부른다.

집 한쪽 벽에는 미취학 아동을 둔 여느 한국인 가정처럼 자음과 모음, 숫자를 익히도록 돕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2008년 한국에 온 은케치씨는 남편과 함께 6살 세쌍둥이, 9살 아들 네 자녀를 키우고 있다. 모두 한국에서 출산했다. 아직까지 난민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유씨는 지난해 5월 난민 활동가로 은케치씨 가정에 문을 두드렸다. 유씨는 의정부교구에서 난민 활동가가 되기 위해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교구는 지난해부터 1본당 1난민가정 돌봄 사업을 시작했다. 유씨는 1년의 활동 기간이 끝났지만 한 달에 두 차례 은케치씨 가정을 방문한다. 네 아이에게 유씨는 외국인이 아닌 이모다. 집에 갈 때는 휴대전화를 감추고, 가지 말라고 떼를 쓴다. 성탄절에는 함께 트리를 만들고, 명절에는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었다. 영화관과 서울대공원에도 함께 놀러 갔다. 이들의 친밀도는 다른 한국인 이모와 조카가 나누는 사랑의 친밀도와 그 깊이가 다르지 않다.


▲ 난민 활동가 유주영씨(오른쪽)는 한달에 두 번 나이지리아에서 온 와추쿠 레베이트 은케치씨 가정을 방문해 가족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한다. 뒤에 한글과 숫자 알림판은 유씨가 아이들을 위해 선물했다.


“에밀리는 친구가 아닌 가족이죠”

“에밀리는 친구가 아니에요. 가족이에요. 구두, 옷, 선풍기, 쌀, 책, 장난감…. 집에 안 가져다준 물건이 없을 정도예요.”

유씨는 한국어가 서툰 큰 아이를 위해 본당 예산으로 방문 학습지 교사를 오게 해줬다. 본당 신자들을 통해 유아용품과 의류, 책을 모아놨다가 방문할 때 들고 온다. 겨울에는 가스비도 지원해줬다.

본당 지원을 통해 은케치씨 가정을 돕지만, 본당에서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 신자들도 만난다. 난민 활동가들은 난민도 우리와 같은 하느님 자녀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

유씨가 난민 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캐나다에서 이주민으로 사는 아들이 마련해줬다. “아들이 캐나다에서 취업준비생으로 무비자인 적이 있었어요. 캐나다인을 한 명도 사귈 수 없었고, 아시아인이라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팠어요. 아들에게 친구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도 난민들에게 다가가게 된 거 같아요.”



“굶어도 내전 겪는 고국보다 낫다”

유씨는 “은케치씨 가정이 3주 동안 생활비 없이 지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눈물을 흘리며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나이지리아보다 훨씬 낫다’고 했던 말에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내가 이곳에 오면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한국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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