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시사진단] CSR에서 벗어나야 사회 혁신 가능(설지인, 마리아 막달레나, 아프리카개발은행 개발금융 전문가)

[시사진단] CSR에서 벗어나야 사회 혁신 가능(설지인, 마리아 막달레나, 아프리카개발은행 개발금융 전문가)

Home > 여론사람들 > 시사진단
2019.09.29 발행 [1532호]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 불리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물론 국내 대기업 및 일부 중소기업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확산하여 있다. 기후 변화는 또다른 기폭제가 되어 천연자원 관리 문제와 투자자들의 성향 변화로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CSR은 국내외 동일 산업군 내에서도 다른 의미와 용어로 통용되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기까지 하나, 기업의 비용과 리스크를 완화하고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창출한다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기업이 ‘어떻게’ 핵심 사업을 관리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효과적인 CSR은 기업의 투명성과 생태계 내 관계자들(기업, 정부, 투자자, 시민사회, 피고용인, 소비자) 간의 협력을 증대시킨다. 더 큰 그림에서는 기업이 시장과 사회에서 어떤 표준을 설정하느냐 하는 리더십의 문제이다. 흔히 통용되는 규범 준수나 자선활동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전략적 의사 결정이라는 말이다.

국제사회에는 관련된 표준으로 이제 43년 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 라인이 있다. 이 가이드 라인에서는 ‘CSR’을 사용하지 않고 ‘기업 책임 경영(RBC, Responsible Business Conduc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016년 실무작업반 의장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이 그 CSR을 죽인 사람이냐(Are you the guy who killed CSR?)” 물었는데, “CSR이 자살한 것(CSR committed suicide!)”이라 답한 촌극이 있다. 기업의 주요 사업 밖에서 부차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공헌 사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기업이 이바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지극히 일부만을 다룰 뿐이다. 세계 지속 가능한 발전 기업협의회 바커 회장이 “CSR은 끝장났다! (CSR is dead. It’s over!)”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피 아난 시절 글로벌 콤팩트를 창립한 존 러기 교수도 CSR이 아닌 ‘CR(Corporate Responsibility)’을 논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CR은 크게 두 가지 뚜렷한 흐름을 보이며 발전해 왔다. 하나는 거버넌스에 관한 것이다. 규칙·표준을 정하고 감사·조사를 통해 결과 보고서를 내던 전통적인 ‘규제 준수’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 작업’의 방식으로, 즉, 근본 원인을 공동으로 찾아 교정하고, 모범 사례를 적용하여 리스크와 이득을 공유하는 한편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진화와 경계 확장이다. 전사전략 관점에서 사회의 필요를 바라보는 것이 기업에 경쟁력의 문제가 되었다. GE, 구글, IBM, 네슬레, 유니레버, 월마트 등은 이미 회사 실적과 노동, 인권, 환경 등의 영역을 연결하고 있다. 4년 전 이코노미스트지 조사에서 전 세계 주요 기업 임원 853명 중 83%가 (74%는 강하게) 인권이 사업에 관계된 문제라 답했다.

이 두 흐름에서 현재 국내에 번져 있는 CSR 열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CR은 정부가 주도할 아젠다가 아니다. 민간이 시장에서 핵심 역량에 기반을 두어 거듭된 혁신을 통해 이끌어 나가야 할 의제이다. 생태계 형성의 보조자여야 할 관(官)에서 협소한 개념을 시장에 주입하여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공헌 영역을 만드는 것 이상 이루기 어렵다. 또한, 대외협력실, 홍보실, 비서실 등을 통해 구식 CSR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본연의 역할에 방만하고 새로운 기회에 뒤처져 있다. CR을 통해 해외 신흥시장 및 프론티어 시장까지 포용하고 개척할 수 있는 한국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기를 기원해 본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