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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의 대륙에 뿌려진 순교자의 피와 땀 기억해야”

“박해의 대륙에 뿌려진 순교자의 피와 땀 기억해야”

중공 치하에서 외국인 선교사들 추방과 강제 노동 수용소의 선교사들 / 서양자 수녀 지음 / 순교의 맥 /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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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8 발행 [1530호]



지구 상에 가톨릭 주교와 사제, 수도자, 신자가 이렇게나 많이 순교한 곳이 또 있을까. 거대한 박해의 대륙이자 신앙이 척박한 나라. 중국이다.

40여 년째 동북아시아 역사 속 방대한 중국 교회사를 연구해온 중국 천주교회 전문가 서양자(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가 최근 「중공 치하에서 외국인 선교사들 추방과 강제 노동 수용소의 선교사들」을 펴냈다.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부터 1957년 애국교회가 성립될 때까지의 중국 교회의 시련기를 다룬 책으로, 근대 중국 내 박해의 참상을 이처럼 상세히 다룬 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공산주의 사상 개조에 사활을 걸었던 중국 공산당. 그리고 중일전쟁과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주변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본. 이들은 중국 내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성당과 교회 시설을 파괴해 약탈까지 일삼았다. 박해자는 또 있었다. 중국 전역에서 활개치던 토비와 마적 떼까지 가세해 교회를 그야말로 박살 내다시피한 것이다. 서 수녀는 홍콩 등 주변국에 남은 귀중한 사료와 보도기사 등을 발굴해 책으로 엮었다.

“중국 교회는 ‘동네북’이었어요. 1921년 창당한 공산당은 초기 자금이 별로 없었으니 천주교를 마구잡이 약탈했죠. 선교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성당을 공산당 건물로 사용했죠. 중국 천주교회는 모택동과 장개석 간 싸움의 희생양이기도 했고요. 당시 중국에 토비, 마적 떼만 2000만 명이 넘었어요.”

‘동네북’은 갈기갈기 찢겼다. 박해가 어찌나 잔혹한지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 먹먹해지는 역사와 대면하게 된다. 1920년대 공산당 유격대들의 성당 침탈로 외국인 사제는 정신병을 앓았고, 교우들은 배교를 강요 당했다. 신앙을 등지지 않으면 농사도, 경제 활동도 못 했다.

박해는 더 심해졌다. 과거 마태오 리치 신부가 사목했던 남창감목구에 1927년 세워진 아름다운 성당은 봉헌 5일 만에 파괴됐고, 길안교구 성당과 학교는 점거 뒤 군인 막사로 쓰였다.

중일전쟁의 혼란 속에도 서양 신부들은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생명을 구했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사제들을 내통자로 낙인찍었고, 일본군도 중국과 밀정하는 정보 제공자로 내몰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에 외국인 선교사5000여 명은 홍콩으로 강제 추방당한다. 심한 고문을 당한 이들은 곧장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거나, 추방 중 순교했다.

서 수녀는 “구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를 모방한 중국의 사상노동개조수용소는 ‘죽음의 공장’이었다”며 참상을 전했다. 수용소에 감금된 사제와 교우들은 영하 40℃가 넘는 추위에 옥수수 하나로 하루 12시간 강제노동을 하다 끝내 순교했다.

서 수녀는 “중국 교회사는 워낙 방대하면서도 조선 시대 박해 때와 달리 신문과 재판 과정 없이 잡는 족족 죽이는 바람에 구체적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국 교회가 영향을 많이 받은 이웃 중국교회의 역사를 통해 많은 이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도구가 됐던 그들의 믿음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알려진 것만 약 5000만 명. 1950~1951년 반혁명죄로 무고하게 사형당한 이들만 100만 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에도 교우가 상당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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