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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사회교리] (28)최후의 심판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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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발행 [1522호]
▲ 최원오 교수



“최고 심판관께서 당신 왼쪽에 세우시고 꾸짖으시는 염소들을 보며 나는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단죄받아 왼쪽에 서게 된 것은 강도짓이나 독성, 불륜이나 다른 금지된 일들을 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인격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고 형제자매들이며 그분의 공동 상속자인 여러분이 내가 하는 말을 믿는다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리스도를 방문합시다. 가난한 그리스도를 돌보고, 그리스도를 먹이며, 그리스도를 입히고, 그리스도를 환대하고,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깁시다.

어떤 이들이 했던 것처럼 그분을 우리 식탁에 초대하거나, 마리아처럼 향유를 발라드리거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무덤에 모시거나, 그리스도를 미지근하게 사랑했던 니코데모처럼 장례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거나, 누구보다도 먼저 그분을 방문했던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유의 주님께서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바라십니다.

수천 마리 양보다 연민의 마음이 낫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짓밟히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통해 이 선물을 그분께 드립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승을 떠날 때,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합시다.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아멘.”(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39-40)



참된 신학자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년) 교부는 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였다. 로마의 주교에 버금가는 위상이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교 역사상 두 번째로 열린 보편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의 의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권력의 노른자위를 노리던 자들이 총대주교 선출의 적법성을 문제 삼으며 교회 일치를 흔들어 대자 그레고리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가난한 구도자로 살았다. 교회사를 통틀어 권력욕에서 가장 초연했던 교부일 것이다.

그의 강론은 명료했다. 어려운 신학 문제들을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인 민중 언어로 풀어내는 역량이 탁월했다. 그래서 신자들은 ‘신학자’(theologos)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글자 그대로 ‘하느님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 곧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이’라는 뜻이다.

이 참된 신학자는 삼위일체 신비를 깊이 묵상하여 정리하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말장난에 빠지지 않았고,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수난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늘 뜨겁게 선포했다.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길

그레고리우스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연설에서 최후의 심판에 관한 깊은 성찰을 나누어 준다. 머잖아 이 고통의 바다 건너 본향에 다다르게 될 때 우리가 갖춰 입어야 할 사랑의 예복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을 저지르지 않고 금은보화로 성전을 장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한 가지가 있으니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섬기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수천 마리 양보다 우리의 자비와 연민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현존인 가난한 이들은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리니, 부디 너무 늦지 않게 주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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