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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사랑의 기도

[제6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사랑의 기도

조인애 (체칠리아, 서울대교구 위례성모승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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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 발행 [1519호]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 요즘도 아버지 곁에서 우리 라파엘 잘 뛰어놀고 있나요?”

어느새 세월이 흘러 저도 이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라파엘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11년 전 우리 라파엘은 제 배 속에서부터 엄마를 위해 저보다 더 많은 기도를 드렸을 텐데….

15주쯤 된 태아를 품고 큰 종합병원 진료실에서 길고도 오랜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내내, 철부지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저 묵주만 붙잡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야훼 이레!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하느님께서 늘 너희와 함께 계신다” 하는 주님의 음성이 저에게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저희와 함께 있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응답 기도를 드렸습니다.

심장은 기형이고 비장도 없이 모든 장기의 좌우가 바뀌어 태어날 우리 셋째아들 라파엘.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를 위해 나는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그 후 저는 우리 아기를 꼭 지켜주기 위해 건강한 두 형처럼 씩씩하게 기를 수 있도록 주님께 청원의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네 살, 두 살배기 꼬마 형제들을 기른다는 명목에 기도는 물론 성사생활을 참으로 게을리하고 있었음을 깊이 후회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새벽잠을 물리치며 매일 새벽에 묵주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준 우리 효자 라파엘. 매일 밤이면 제 배 속의 아기를 살려달라며 제발 정상적인 아기로 치유시켜 주시길 눈물로 지새운 수많은 시간….

아기를 낳기 전까지 아기의 겉모습이 내심 걱정돼 아기가 태어나면 제 눈에만은 사랑스럽게 보이길 기도한 적도 많았던 제 기도가 너무나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 라파엘의 얼굴은 봄꽃처럼 참 곱고 환하게 빛났습니다.

라파엘은 태어나자마자 심장 수술 준비를 위해 소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동안 입원하였고, 우리 부부는 아기를 만나기 위해 먼 병원으로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모아 놓은 모유를 배달하러 가면서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심장 수술하기 보름 전, 소아병실에서 라파엘을 만나 병실 침대에서 직접 모유를 먹이며 하루 종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직접 만든 흑백 모빌을 달아서 놀아주며 함께 웃고 우리 아기를 따뜻한 품 안에 안고 잠을 재우며 ‘지금 이곳은 천국이 아닐까?’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떨리던 수술 날 아침, 남편과 함께 아기의 작은 손과 발을 붙잡으며 우리는 주님께 참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수술 내내 수백 번, 수천 번 “주님! 저 수술대 위에 죄 없는 갓난아기의 작고 여린 심장이 아니라 까맣고 죄 많은 제 심장이 올라갈 수는 없겠습니까?” 하고 되뇌며 가슴을 움켜잡고 놓지를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날, 주님께서 저희에게 크신 자비를 베풀어주시어 우리 라파엘의 수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하지만 소아 중환자실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달게 나누어야 했던 우리 아기 라파엘. 응급 상황을 대비해 수술 부위를 아직도 꿰매지 않은 채 거즈로 가려진 한 아기의 심장을 부모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아기 머리맡에 조용히 성모님 사진을 붙여 놓고 면회 때마다 우리 부부는 숨죽여 소리 없는 눈물로 기도를 드리며 주님께 모두 맡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라파엘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개구쟁이 형이 기다리는 보금자리로 돌아왔고 짓궂은 형들의 장난과 고함에도 씩씩하게 웃는 얼굴로 태어난 지 백일을 맞이했습니다. 젖살이 한창 올라 토실토실한 얼굴에 눈만 마주치면 방실방실 환한 미소로 인사하던 눈에 넣어 하나도 안 아플 우리 귀여운 막둥이가 백일잔치를 마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은 함께 울고 웃으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응원해 주었던 시댁 가족과 친정 가족 모두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감동의 선물이었습니다.

세례식 이후 며칠이 지나 라파엘은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흔하게 걸리는 감기지만 심장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장마저 없었던 우리 아기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병이었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개구쟁이 두 형제를 두고 멀리 있는 심장병원에 입원시키기 무리라 생각하여 집 가까운 대학병원을 선택했습니다. 세 아이를 기르며 개인 병실료는 엄두를 못 내고 정신없고 시끌벅적한 다인실에서 아픈 아기를 치료하게 하였던 참 마음 아픈 시절이었습니다.

심한 기침으로 밤새 잠을 설치고 보채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수없이 등에 업고 다니며 몇 날 며칠을 꼬박 새었는지…. 그때 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저 자신조차 추스르기가 너무 힘들어 마음과 입에서 기도가 아닌 가혹한 현실을 불평과 원망으로 저주하던 참으로 나약하고 볼품없기 짝이 없는 미천한 죄인이었습니다.

주일이 되자 친정어머니께서 병실에 오셨고 그제야 정신을 좀 추스르며 병원 원목실로 미사를 드리러 가자, 성사를 주신다는 신부님 말씀에 자석에 이끌리듯 고해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기가 아프면서 마음 안에 미움과 원망, 불평등을 품었던 모든 죄를 고해하기 시작하는데 아기 예수님과 라파엘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피를 흘리게 했다는 생각을 하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미사 전 긴급하거나 꼭 필요한 메시지가 있는 분은 작은 상자에 쪽지를 넣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영성체 후 묵상 중에 제 쪽지의 기도가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라파엘에게, 엄마가 정말 미안해. 마음 안에 미움과 불평이 우리 아기를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게 한 것 같구나. 너무나 부족한 이 엄마를 용서해주렴. 이젠 우리 아기를 위해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주님께 나아가도록 용기를 낼게. 정말 많이 사랑한다. 우리 아기.”

다음날 라파엘은 기적처럼 감기가 호전되어 퇴원하였고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된 우리 부부는 우리를 기다렸던 형제들과 함께 자장면 파티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퇴원 후 하루 이틀이 지나자 라파엘은 깊은 밤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열도 나지 않고 기침도 하지 않는데 아기가 왜 이리 우는 걸까…. 늦은 밤 곤히 잠들어있는 꼬마 형제들을 맡길 수 없어 병원도 못 가고 또다시 밤새도록 아기를 업고 달래어 엄마 등에서 새우잠을 재우는 참으로 숨 막히게 지치는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 밤새 잠을 설친 남편은 우리 아기 아프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해달라며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갔습니다. 아침 일찍 우리는 남편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작은 아이는 시댁에 맡기고 서둘러 차 안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젯밤에 그렇게 울던 아기가 편안히 미소를 지으며 분유를 먹었고 우리는 함께 여행을 떠나듯이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성가를 들으며 참으로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에서 내려 남편과 내가 아기를 안고 마주 보는데 라파엘이 우리를 보고 힘없이 웃으며 마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 엄마! 저처럼 항상 웃으세요. 힘들고 지치실 때 제 미소를 떠올리며 힘을 내세요!”

당일 접수를 할 수 없는 체계의 종합병원이라 어찌할 수 없이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을 통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곡을 하며 큰 소리로 우는 사람, 들것에 피를 흘리며 실려 오는 사람들…. 들어가는 길 내내 참 무섭고 우리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기엔 왠지 끔찍한 곳 같았습니다.

소아 응급실에 도착하자 산소포화도가 낮다며 여러 검사를 받기 위해 주사실에서 아기에게 수면 시럽을 먹이고 링거 처치하는 동안 아기와 떨어져 주사실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문밖으로 새어나오는 우리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한없이 옥조여 왔습니다. 손과 발이 모두 십자가에서 대못에 박히신 예수님처럼 우리 죄를 대신해서 우리 아들이 그곳 안에서 날카로운 주삿바늘에 찔리며 십자가에 못 박혀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내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주사실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우르르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몰려와 뛰어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처치를 하는 동안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묵주를 잡고 있었지만 더 이상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두렵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저희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기가 죽다니요. 주님께서 어렵게 살려주신 새 생명이 어찌 이리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까. 주님 저희는 아기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죽음의 준비는 더더욱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기가 갑자기 떠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 주님. 제가 아무리 못난 어미이지만 제가 아무리 당신께 못마땅한 죄인이지만 이렇게 아기를 데려가시다니요. 너무나… 너무나… 무심하십니다. 아직 해 주지 못한 것이 더 많은데…. 두 형을 돌보며 집안 살림하느라 우리 라파엘을 많이 안아주지도 못하고 젖 먹일 시간조차 없어 형들처럼 모유 수유도 제대로 못 해주었는데….

그 고통 중에 우리에게 항상 환한 미소만 보여주었던 막둥이에게 사랑을 다 해주지 못한 미련이 남아서 자꾸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먹먹하고 눈물만 납니다. 이 미련한 엄마는 이기심과 어둠 속에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 지혜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 죄를 어찌 갚을까요…. 이 죄를 어찌 잊을까요….


▲ 삽화=장희원

 

한동안 저는 가족이 모두 잠든 밤에도 아기가 너무 그리워 잠이 들지 못하고 숨겨놓았던 라파엘의 사진을 들고 소리 없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잠이 좀처럼 오지 않던 어느 날, 천둥이 치며 때늦은 가을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밤. 처음엔 유독 커다란 천둥소리가 저를 혼내시는 하느님 목소리 같아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가야. 그곳은 아프지 않고 편안하니? 천국에서 하느님과 성모님, 성인, 성녀님들과 천사들이 우리 라파엘 잘 돌봐주고 계시겠지?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다오. 엄마는 네가 떠난 이곳에서 아직도 내가 널 업어 주고 안아주어야 우리 아기가 잠이 들 것만 같은데…. 제발 꿈속에서라도 우리 아가가 천국에서 평화로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주님 우리 아가를 잘 부탁드려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섭게 느껴진 천둥소리가 조금씩 달리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저 여기 있어요!” 바로 우리 라파엘이 하늘에서 엄마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 소리로 울어서 엄마에게 제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곳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지요?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곧 엄마 생신엔 제 얼굴처럼 하얀 눈꽃송이를 내려 드릴게요. 엄마, 저는 항상 엄마 곁에 있어요. 이렇게 천둥처럼 큰소리도 낼 수 있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요. 천사 아들이 엄마를 지켜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세요. 빗소리가 세찰수록 저는 엄마를 향해 손뼉을 세게 치며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거예요.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 오면 눈 부신 햇살에 예전처럼 엄마 눈을 마주치고 빙그레 웃던 라파엘 얼굴이 보이겠지요. 슬퍼하지 마시고 늘 저처럼 웃으며 사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늘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시간에 제가 항상 함께하는걸요. 제 하루는 온종일 하느님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일이니까요.”
 

그 후로 하루하루 라파엘이 제 가슴속에 숨 쉬는 것 같았고, 마음 안에 감사의 메아리가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얼굴에 웃음도 되찾고 남아 있는 두 형제에게 사랑의 눈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소식이 우리 가정에 행복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네 번째 임신 소식. ‘아들일까? 딸일까?’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의 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지 아기를 제대로 맞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헤매던 마음을 안고 우리 가족이 함께 찾아간 곳은 기적의 매괴 성모님이 계신 감곡성지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기도와 찬미의 밤 미사를 드리며 마음 안에 한가득 친정어머니께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편지 봉헌을 하고 나면 저를 참 크신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는 듯했습니다. 만삭이 된 배를 한 채 두 형제를 데리고 성지 유아실에서 지지고 볶으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니 꼭 성령의 위로로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윽고 우리 집안에 태어난 갓난아기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고, 라파엘이 다시 찾아온 것 같이 우리 가족 모두는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었습니다. 주말마다 아기를 안고 두 형제와 함께 어린이 미사를 드리면 주님께서는 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축복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어느덧 라파엘 여동생의 첫돌이 지나고 또 한 번의 소식은 저를 조금 어둡게 하였습니다. “주님, 또 임신입니다. 이를 어떻게 하지요. 이제 좀 마음을 추스르는 중인데 아기 한 명을 더 맡기시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많은 아이 모두에게 제 사랑을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을지요.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으로 허리 디스크 통증과 종아리가 부어 울퉁불퉁 튀어나온 정맥류가 심각한 상황에서 저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주위에도 알리기 너무 부끄럽고, 남편 혼자 벌어서 사는 살림에 이 상황은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저는 그저 떠난 라파엘 대신 여동생이 태어나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는데 제게 진 짐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주님은 또 한 번 주저앉은 저에게 ‘일어나거라!’ 하시며 손을 내미십니다. 주님, 걸어가야 하겠지요. 주님께서 가신 길 저도 함께 걸어야 우리 라파엘 만나는 길이 되겠지요.”
 

“하느님 우리 아가 잘 부탁드려요”라는 기도를 시작으로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차츰 믿음을 갖고 희망의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불러올 때까지 하늘만 알아주시길 청하며 묵묵히 배 속의 아기를 지켜냈습니다. 지금은 그 아기가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고 착하고 애교 많은 막내딸로 우리 집에서 사랑을 듬뿍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꼬마 아이 다섯을 기르며 울고 웃었던 기나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올해 봄. 사순절의 끝 자락쯤 라파엘의 여동생들과 함께 어린이 미사를 드리며 성체를 모시고 고요히 묵상하는데 등 뒤에서 따뜻하게 들려오는 성가대 아이들의 합창 목소리로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라는 생활성가 곡을 참으로 감명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가 가사는 제 지난날 주님과 함께 걸어온 모든 세월과 추억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 삽화=장희원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위해 주님 불렀는데/ 매 자리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나의 이름 잊지 않으셨네/ 가슴 메어질 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내가 이해받기를 바랐고 내가 위로받기 원했는데/ 못 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의 고통 중에도 내 이름 가슴에 안으셨네/ 녹아내릴 듯한 그 눈길 내게 말하시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결코, 홀로 해낼 수 없었을 그동안의 공백들을 고요히 채워주신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늘 우리 가정 곁에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어머니가 되어주셨음을 저는 이제서야 고백 드립니다. 2남 2녀 우리 네 남매가 미흡한 아빠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참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부족하고 미약한 가운데 우리는 한가족이기에 하느님 닮아가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보물 같은 진실이 너무도 값지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활절이 올 때면 우리 가족이 항상 찾아가는 팔당에 한 묘원이 있습니다. 제법 높은 동산을 오르면 강물이 은빛으로 반짝반짝 눈부시게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작은 철쭉꽃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우리 아이들은 늘 그곳에서 해맑은 웃음소리로 라파엘에게 인사를 나누며 꽃나무 앞에 들꽃을 놓아주기도 하고 때론 집에서 가져온 사탕을 묻어주기도 합니다.
 

철쭉나무에서 처음으로 연분홍 꽃이 폈던 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꼬마 꽃나무를 한 아름 안아주며 아기 머리에 난 솜털처럼 부드럽고 여린 꽃잎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라파엘.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네가 너무 그립다” 하고 속삭이는데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따뜻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제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오늘은 제가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저를 잊지 않고 항상 찾아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엄마가 행복하면 하늘에서 저는 더 행복해요. 아빠, 엄마, 형아, 동생들아!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해. 이곳에서 우리 만날 날까지 제가 항상 지켜 줄게요. 나는 어느 곳에나 사랑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 곁에 있어요. 모두 행복하세요. 그리고 서로 사랑하세요.”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 텅 빈 제 가슴 안으로 한가득 메아리쳐 울린 우리 아기 라파엘의 사랑 가득한 노랫소리.
 

그때 전 하염없이 타고 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래. 아가야, 이젠 엄마 울지 않을게. 우리 아기 천사 라파엘처럼 아파도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미소 지을게. 고맙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 우리 아기.”
 

감사합니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의 아버지.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제 안에 사랑의 성령이 없다면 저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모두 맡기오니 부족한 저를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여 제가 주님의 소명을 다 할 때까지 끊임없이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조인애(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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