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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절박한 사랑의 계명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절박한 사랑의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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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9 발행 [1515호]
▲ 한민택 신부



신흥 종파에 빠졌다가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왜 이렇게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는가요?”

비록 그릇된 교리와 성경 공부에 현혹되어 올바른 신앙을 잃었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최소한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뜨거웠습니다. 세상 종말이 곧 올 줄로 믿고 정신을 차려 깨어 있었으며, 매일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믿고 기다린 종말의 날이 오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신흥 종파들이 일깨워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리스도 신앙의 ‘종말론적’ 특성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였으며, 당신과 함께 그 나라가 이미 세상에 와 있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종말을 너무 먼 훗날로 밀어놓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열정적이지 못한지도 모릅니다. 다음의 묵시록 말씀이 우리에게도 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오늘 제2독서의 묵시록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새 예루살렘이 도래하면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분께서 인간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한 기다림은 신앙을,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매우 절박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윤리적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희망에 찬 기다림이며, 지금 여기 존재하는 불의와 부조리, 폭력과 죽음, 상처와 절망에 대한 저항이며 울부짖음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액세서리와 같이 여기지 않는지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먼 훗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티켓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절박함’을 발견할 수 있는가요?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3-34)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와 죽음의 그늘에서, 불의와 부조리의 사슬에서, 슬픔과 절망의 심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복음은 오늘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가 형제와 이웃의 삶에서 죽음과 슬픔, 울부짖음과 괴로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간절히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매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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