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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일하며 기도하는 소박한 삶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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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도전돌밭공동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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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1 발행 [1511호]
▲ 서명원(왼쪽) 신부가 도전돌밭공동체 뒷동산에 새로 설치한 십자가의 길 15처를 가리키며 공동체 식구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도전돌밭공동체 명상센터. 뒷동산에는 최근 십자가의 길 15처를 설치했다.

▲ 새로 설치한 도전돌밭공동체 표지판을 들춰보는 서명원 신부.



문명은 한계를 드러냈다. 재앙에 직면한 우리 미래에 대한 희망은 생태적 삶으로의 회귀밖에 달리 길이 없음을 보여준다.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직을 퇴임한 예수회 한국관구 서명원(본명 Bernard Senecal, 66) 신부도 새로운 문명을 꿈꾸며 공동체를 만들었다.

퇴직 이전부터 준비해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새향길(도전리), 태백산의 끝자락에 터를 잡은 ‘도전돌밭공동체’다. 도전은 공동체가 자리 잡은 마을 이름의 한자만 바꿔 ‘온전한 길’이라는 뜻의 도전(道全)으로 정했고, 돌밭은 이들이 일구는 땅이 돌밭이기에 거기서 이름을 땄다. 현실은 돌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간 그 길, 곧 생명의 길, 부활의 길, 영생의 길을 따라 살고 싶다는 속내가 담겼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여주 도전돌밭공동체를 찾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중앙선 양동역에서 내리니 봄비가 흠뻑 내렸다. 봄 가뭄에 단비다. 논배미 건너 실개천 다리를 지나자마자 샛길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고향 같은 길이라고, 새향길이라고 이름 붙인 아늑한 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6ㆍ25 땐 휴전협정이 끝나고 나서야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됐을 정도로 ‘외진’ 마을이다.

봄비에 밭을 갈던 공동체 식구들은 마침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 15처를 세운다. 부활을 알린 ‘눈부시게 차려입은 두 남자’(루카 24,4-7 참조)를 그린 15처를 포함했다. 공동체 식구인 고성진(요셉) 조각가가 봉헌했다. 7년간 투석만 하다가 1년 전 신장을 이식받아 되살아난 뒤 그림 타일을 가마에 구워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

십자가의 길을 만드는 여정에 함께한 김춘미(아녜스)씨는 “작가가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 속에서 기도하며 그려낸 십자가의 길이어선지 정말 느낌이 남다르다”며 “아주 질박한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 소박한 게 더 감동적”이라고 전한다. 그러고 나서 “특히 빈 무덤에 나타난 두 천사의 모습만 그린 15처가 무척 인상적”이라고 했다.

서명원 신부가 꿈꾸는 공동체는 기도 수행과 노동을 통한 ‘비움’의 공동체다.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마음을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다”는 서 신부는 전통 관상수도원 방식으로 공동체 명상센터를 지었다. 평면 사각형으로 컨테이너를 맞물리고 정원에는 자갈을 깔았다. 지붕은 이중으로 만들어 ‘성령의 바람’이 지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공동체 건물은 사각형이면서도 사방으로 문을 둬 사통팔달하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우리 공동체는 아집을 끊어버리고, 예수님의 현존이 거짓 자아를 대체하도록 수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 뭐가 도움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참 나가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 영성입니다.”

수행 방식은 이냐시오 관상기도를 토대로 한다. 이냐시오 성인이 받은 조명, 곧 삼위일체의 친교에서 창조, 성체를 통해 세상 안에 계시는 주님, 강생 신비, 깨달음으로 정점을 이룬다. 이를 위해 날마다 아침ㆍ저녁기도를 하고, 식사도 두 끼니로 최소화했다. 공부와 연구, 명상은 당연히 뒤따른다. 교회일치운동과 이웃 종교와의 대화도 시시때때로 이뤄진다.

공동체 활동에는 생태적 삶을 공동체 차원에서 구현하기 위한 유기농 농사가 끼어 있다. 흙을 만지는, 먹는 음식 일부만 생산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최소한만 생산하려 한다. 소박한 생활방식으로 돌아가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농사에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그래도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밭에서 옥수수와 땅콩, 고구마, 감자, 당근, 야콘, 고추, 배추, 무, 토마토, 토란 등 20여 가지 작물을 재배 생산한다. 가장 많이 생산한 건 들깨로, 지난해 두 가마를 생산해 들기름을 수십 리터나 뽑아냈다.

공동체는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등록한 식구는 50명을 채웠지만, 함께 사는 식구는 서넛에 그친다. 서 신부 또한 “공동체가 어떻게,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공부와 연구를 위한 도서실과 성경 공부를 위한 공간도 만들고, 현재 8개 실에 그치는 숙소도 더 만들 계획으로 토지 형질 변경과 개발 허가를 받았다.

▲ 서명원 신부.


이 공동체의 탄생은 불교학자로 예수회원인 서 신부가 아니라면 어려웠을 터다. 1953년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서 신부는 ‘3대 의사 집안’을 만들고 싶다는 부모 뜻에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보르도 의대에 다니다가 ‘의미 있는 삶’을 찾아 1979년 예수회 프랑스관구에 입회, 한국으로 파견됐다. 파리 7대학에서 한국불교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14년간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강의해왔다. 여전히 그는 서강대 종교연구소 국제학술 등재지인 「Journal of Korean Religions」(한국 종교 저널) 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공부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이 기도 수행과 노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행자들의 공동체를 탄생할 수 있게 했다.

공동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들녘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칠순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도 ‘의미 있는 삶’을 꿈꾸는 노 사제와 평신도들의 기도를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에서도 서 신부의 말이 귓전에 울린다.

“깊은 산골의 가장자리, 농사를 짓기에도 너무 척박하고 힘든 이 땅에서 길이 완성됩니다. 길의 끝,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 끝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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