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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희생자 위해 기도하다

10여년 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희생자 위해 기도하다

가해자 조승희 동네 주민이었던 박옥희씨, 신리성지에 희생자 이름으로 후원금 내고 추모 책자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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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발행 [1510호]
▲ 2007년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박옥희씨. 그의 뒤로 신리성지에 마련된 희생자들 명패가 걸려있다. 박옥희씨 제공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사망한 피해자만 32명이었다.

“엄마, 뉴스 봤어? 엄마 동네에 사는 한국인이 총으로 30명을 쏴 죽였다는데….”

당시 동네 주민이었던 박옥희(아기 예수의 데레사, 83, 버지니아 한인본당)씨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딸에게 전화를 받고 넋을 잃었다. 범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미 영주권자 조승희씨였다. 조씨는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동네 주민이었다.

박씨는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가슴을 부여잡고 가까운 성당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십자가를 향해 삿대질했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다 죽지만…. 청춘이 구만리 같은 이 어린 양들을 어찌하여 가슴에 한을 심어 놓고 데려가십니까?”

그는 성당에 500달러를 봉헌하고, 희생자 32명과 조승희씨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세 자녀의 엄마인 박씨는 32명의 학생이 남의 자식 같지가 않았다. 178발의 총성이 맑은 하늘을 찢었던 그날 이후, 박씨는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난 꺾여버린 꽃송이 같은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있는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단장을 맡고 있던 박씨는 매주 희생자 한 명씩을 기억하며 단원들과 연도를 바쳤다.

충남 당진에 있는 신리성지 후원자이기도 한 박씨는 2011년 신리성지에 희생자들 이름으로 후원금을 냈다. 한 명당 30만 원씩 봉헌했다. 신리성지 성당에는 ‘미국 버지니아 공대 희생자들을 기억하며’라고 적힌 희생자들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걸려 있다. 제일 마지막에 조승희씨 이름도 있다.

“같은 민족의 잘못이라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희생자 영혼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와 반성으로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희생자들의 10주기를 맞은 2017년에 버지니아 공대에 세워진 희생자 추모비와 신리성지에 걸린 희생자들의 명패 사진, 추모글을 실은 작은 소책자를 펴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소책자를 제작할 방법이 없었지만, 당시 고등학생인 손자가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줬다. 한글을 모르는 미국인 손자가 3개월 동안 한 단어씩 번역해 한국어 소책자를 제작해줬다.

박씨는 “희생자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만나 치유와 위안을 선물해주고 싶다”면서 “얼굴도 모르는 한국인이 희생된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어 한국의 성지에 자녀를 봉헌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신리성지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전화 인터뷰에서 박씨는 “나를 알리는 것은 공덕을 깎아 먹는 것”이라며 “나를 드러내기 위해 한 일도 아니며, 나를 드러내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말했다.

1983년 박씨는 남편과 자녀 셋과 함께 미국 이민을 떠났다. 세 자녀는 출가했고, 2000년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본당에서 15년째 레지오 마리애 단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산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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