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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독서공동체의 회복(표정훈, 요한 사도, 출판평론가)

[시사진단] 독서공동체의 회복(표정훈, 요한 사도,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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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발행 [1510호]




“책 읽을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이런 식으로 침묵 속에서 독서에 빠진 그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절대로 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지 않았다.”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340~397)가 책 읽는 모습을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묘사했다. 왜 묘사했을까? 대략 10세기까지 서양에서 소리 내어 읽지 않는 묵독은 드문 일이었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었다. 성 암브로시오의 묵독이 꽤 특이해 보였던 것.

서양뿐 아니라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정인지(1396~1478)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을 넘어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절차를 밟아 혼인하겠노라 달래어 처녀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정인지는 이사 가버렸고 처녀는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광조, 심수경, 김안국, 상진 등도 젊은 선비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처녀가 담 넘은 전설의 주인공들이다.

경전을 낭독하는 것은 세계의 주요 종교들의 공통점이다. 교회에서는 말씀 전례에서 성경을 읽어 전례 참여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이를 독서자라고 한다.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등은 낭송하는 음까지 자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슬람의 ‘코란’은 혼례나 장례, 국경일, 각종 공식 모임 등에서 낭송되며 독경사(讀經士)를 초빙할 때도 있다.

유다인들도 다양한 악센트와 리듬으로 각 지역 특유의 정서까지 반영시켜 성경을 낭독했으며, 역시 독경사들이 활동했다. 전통 사회에서 성립된 텍스트 대다수는 낭독을 전제로 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귀족의 개인 살롱에서 책을 낭독하고 감상하는 모임이 자주 열리곤 하였다. 조선에서는 전문적인 소설 낭독가인 전기수(傳奇)들이 활동했다. 독서의 역사에서 이렇게 낭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눈과 머리로 읽는 묵독에 비해 낭독은 온몸으로 읽는다. 묵독은 사밀(私密)한 개인적 행위지만, 낭독은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한다. 독서란 본래 함께 읽는 행위였다. 책이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물건이었다. 예전처럼 책을 낭독하지는 않더라도 책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독서공동체가 최근 늘고 있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전국 도서관들이 진행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이 대표적이다.

독서공동체는 그 이상적인 의미에서 ‘책과 독서를 매개로 소통으로서의 교양과 시민적 상식을 함양하며 책임 있는 친교를 나누는 자율적 시민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서공동체의 범위는 소규모 모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교회 전체를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읽는 하나의 독서공동체로 볼 수도 있다. 독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책이 공론(公論)을 형성하는 매체가 되고, 독서가 공론 형성의 바탕이 되는 가능성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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