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사순 기획]“환자들이 새소리 듣고 꽃향기 맡을 수 있는 산책길 만들어요”

[사순 기획]“환자들이 새소리 듣고 꽃향기 맡을 수 있는 산책길 만들어요”

모현센터의원 ‘자작나무 산책길’ 조성 돕는 신현자 단장

Home > 기획특집 > 일반기사
2019.03.10 발행 [1505호]
▲ 신현자씨와 미소가득화초봉사단이 가꾼 모현센터의원의 정원은 늘 생명으로 가득하다. 센터에 입원한 환자들은 작은 자연의 품에서 위안을 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모현센터의원에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과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신현자씨.

▲ 자작나무 산책길 조성을 앞둔 모현센터의원 정원. 산책길이 완성되면 환자들이 침상에 누워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자신이 가꾼 모현센터의원 정원에 선 신현자씨. 김홍주 스테파노 제공



호스피스병동과 요양원을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 모현센터의원에 침상으로 이동하며 자연을 느끼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부 정원이 조성된다. 생의 끝에 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호스피스 환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여러 은인의 정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소가득화초봉사단 신현자(아녜스, 56) 단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순시기에 첫 삽을 떠 부활시기에 축복하는 ‘자작나무 산책길’ 조성 현장을 찾았다.



산책길 확장, 재능 기부와 후원으로

“이동 침상과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산책길, 환자가 의식이 없어도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는 등 오감을 자극하는 산책길을 조성하려 합니다.”

산책길 조성을 진행하는 미소가득화초봉사단 신현자 단장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자연을 느끼며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산책길이 될 것”이라며 “산책길 디자인과 시공에 필요한 비용은 재능 기부와 후원으로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의원 정원 뒤편 공터를 산책길로 조성해 산책로 길이를 3배 정도 늘리는 대공사다. 산책길 디자인은 30여 년 아침고요수목원을 가꾼 이병철 전 이사가 총괄했고, 세부 디자인과 시공은 이주은 팀펄리가든 대표가 재능 기부했다. 현재 154명이 후원에 동참했다.

“자작나무 가득한 산책길은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의 일생을 담고 있어요. 엄마의 품속을 닮은 자궁 모양의 연못과 성장기를 상징하는 감각 정원, 그리고 그 끝은 천국으로 가는 관문이자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가든이 들어서죠.”

환자들이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죽음을 하나의 삶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공사 금액이 1억에 이르는 산책길 조성을 결심하기까지 신씨는 깊게 고민했다. 그는 “기존 정원은 길이 좁고 짧아 휠체어나 침상이 나오기 힘들어 산책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았다”며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믿음으로 산책길 조성을 시작했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격려와 정성으로 감동적 드라마를 쓰려 한다”고 말했다.



꽃에서 삶의 기쁨 찾다, 봉사 13년째

신씨의 봉사는 시련을 겪으며 시작됐다. 교사 출신인 그는 결혼 후 공부방을 운영했다. 교육 사업은 번창했지만, 건강을 잃고 우울증 증상을 겪었다. 그는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본 쑥부쟁이 꽃에서 큰 위로를 얻었다. 꽃이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는 생각에 본업도 그만둔 채 꽃밭 가꾸기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 잇따라 실패했다. 이때부터 식물과 정원을 알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꽃꽂이 자격증을 따고 원예치료사 과정도 수료하며 본격적 봉사에 들어갔다.

시간과 사비를 털어 하는 봉사는 쉽지 않았지만,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가족과 지인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봉사단도 꾸려 마재성지를 시작으로 모현센터의원과 메리놀외방선교회, 성 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등에서 13년째 정원 가꾸는 봉사를 하고 있다. 신씨의 거칠어진 손이 긴 시간 정원에 쏟은 정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런 신씨는 사람들에게 ‘자매님’ ‘아줌마’‘이모’ ‘언니’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그중에는 ‘보살님이냐’ 묻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화초를 심는 일이 막노동에 가깝다 보니 펑퍼짐한 바지와 윗도리, 챙이 있는 모자와 천 스카프 차림이 사찰을 찾는 신도를 연상케 한다.

그동안의 노력은 작은 보답을 받기도 했다. 그가 가꾼 모현센터의원 정원은 2015년 제4회 경기정원문화대상 금상 수상과 2017년 국립수목원이 발행한 ‘가보고 싶은 정원 100’에도 수록됐다. 센터 정원에는 봄이면 수선화와 튤립, 아이리스 등이 꽃을 피운다. 여름에는 초록으로 물들고 가을에는 단풍 사이로 국화가 그 자태를 자랑한다.

신씨는 “정원은 지속적 관리가 필요해 일주일에 나흘은 꽃밭에 있어 이 일이 직업인 줄 아는 분들도 있다”며 “내가 쏟는 정성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봉사를 마음먹는 마중물이 된다는 생각에 행복을 얻는다”고 말했다.



생명의 꽃 가득한 주님의 정원

신씨는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기간은 평균 20여 일, 짧게는 하루나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며 “한 달 걸리는 공사 기간을 생각하면 ‘완공된 산책길을 거닐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신씨의 우려와 달리 자작나무 산책길 조성 소식에 환자들의 관심은 뜨겁다.

며칠 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할머니가 딸에게 건넨 첫 마디는 “자작나무 기증했냐”였다. 꽃과 화초를 병실에 키우던 한 환자는 “화초를 정원에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씨가 가꾼 꽃밭에서 찍은 사진을 영정으로 쓸 정도로 꽃밭에서 생의 마지막 큰 위로를 얻었다. 이외에도 자신이 모은 몇천 원을 건네는 이들, 후원금을 내고 선종하신 이들, 후원에 동참하는 병원 직원 등 많은 이들이 산책길 조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모현센터의원 원장 표양복 수녀(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내 숨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며 “환자들이 산책길에서 나도 자연의 일부로 느끼고 죽음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힘을 얻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신씨가 삽을 들고 정원의 식물들을 옮겨심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창설자인 메리포터 수녀님은 ‘인간은 세상이라는 정원에 핀 하나의 꽃’이라는 말을 남겼어요. 많은 이들과 선한 마음이 모여 조성되는 자작나무 산책길이 생명의 꽃 가득한 주님의 정원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작나무 산책길 후원 문의 : 031-536-8998, 모현센터의원

글·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