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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김구 선생 유묵이 박병래 원장에게 전달된 경위

[3·1절 특집] 김구 선생 유묵이 박병래 원장에게 전달된 경위

독실한 며느리 소개로 인연… 20년간 김구 손녀 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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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발행 [1504호]
▲ 백범 김구 선생과 박병래(앞줄 오른쪽) 원장. 박 원장은 김구 선생이 안고 있는 손녀 김효자를 대신 키웠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김구 선생 유묵이 박병래 원장에게 전해진 경로를 알기 위해서는 해방 이후 이들의 인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김구 선생은 환국 후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탈장 수술을 받는다. 김구 선생이 성모병원을 찾게 된 건 며느리인 안미생(수산나)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안미생은 안중근(토마스, 1879~1910) 의사의 조카다. 안중근 동생 안정근(치릴로, 1885~1949)의 차녀인 그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1917∼1945)과 결혼했다. 김구와 안중근 집안이 사돈이 된 것이다. 안중근 가문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기에, 안미생도 평소 존경하던 박 원장을 시아버지 김구에게 소개한 것이다.

김구 선생과 박 원장의 인연은 퇴원 후에도 이어진다. 박 원장은 경교장(김구의 사저)을 찾아가 김구 선생을 진찰하고, 그를 천주교에 입교시키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둘의 각별한 연결고리는 김구의 손녀 김효자(金孝子)다. 김구 선생은 1947년 당시 미국에 머물던 며느리 안미생을 대신해 어린 손녀를 돌본다. 박 원장은 그런 김구와 어린 손녀를 보고, 자신이 김효자를 데려다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박 원장이 자신의 집에 또래 아이들도 있다고 전하자 김구 선생은 이를 허락했다. 박 원장은 김효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날 때까지 20년간 친딸처럼 돌봤다.

박 원장은 김구 선생이 서거할 때에도 곁에 머물렀다. 박 원장은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총격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교장으로 달려가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응급조치를 했다. 또 박 원장은 직접 김구 선생이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박 원장은 천주교식으로 염습(殮襲)하며 김구 선생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줬다.

이처럼 김구 선생의 유묵은 양 가문의 끈끈한 정을 기반으로 박 원장에게 자연스레 전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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