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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트윗을] (83) 르네상스 때 교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느님과 트윗을] (83) 르네상스 때 교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인간 중심의 사고 이끈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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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발행 [1500호]


문 : 교황청은 로마에만 있었나요

답 : 14세기 교황청은 약 70년간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있었습니다. 이를 ‘아비뇽 교황 시대’라고 합니다. 교황이 아비뇽에 머무르게 된 이유는 프랑스 왕권이 강력해지면서 교황권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신자들을 이끄는 목자라기보다는 법학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는 교황 권력을 두고 프랑스의 필리프 4세 국왕과 충돌했고, 1303년 프랑스 국왕의 사절에게 모욕을 당한 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1309년 보르도 대주교였던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가 교황이 됐습니다. 그는 교황청을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겼습니다. 그의 후계자 6명도 모두 프랑스인으로서 아비뇽에서 살았습니다. 교황청의 로마 귀환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377년 이탈리아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의 호소에 힘입어,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은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문 : 교회는 어떤 분열을 겪었나요

답 : 우르바노 6세(재위 1378~1389년) 교황이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의 후임으로 선출된 다음 몇 개월이 지나, 프랑스 추기경들은 독자적으로 그들의 교황을 선출했습니다. 이 ‘대립 교황(antipope)’은 자신을 클레멘스 7세라 불렀습니다. 그는 아비뇽에 거처를 잡았습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 안에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서구 대이교(大離敎)’라 부릅니다. 서로 경쟁하던 교황들은 자기가 합법한 교황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파문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누가 진짜 교황인지를 두고 큰 혼란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은 1417년이 돼서야 개혁 회의라 불리는 독일 콘스탄츠 공의회로 해결됐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여한 추기경과 주교들은 마르티노 5세(재위 1417~1431년) 교황을 선출하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인정했습니다.



문 : 교회는 실추된 위신을 어떻게 쇄신했나요

답 : 이런 사건들을 겪은 후, 교회에는 참된 쇄신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데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개혁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15세기 교황들은 유럽 예술과 유럽 지성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런데 교황이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세속적으로 변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친척이나 지인에게 일자리나 관직을 주고 성직을 매매하는 일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문 :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답 : 르네상스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지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르네상스는 과학, 예술, 그리고 교회 생활에 대해 새롭게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고 현세 사물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결국, 르네상스는 사람들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게 했습니다.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때때로 교회 지도자들은 약하거나 악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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