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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트윗을](77) 중세에 일어난 영적 쇄신은 무엇인가요

[하느님과 트윗을](77) 중세에 일어난 영적 쇄신은 무엇인가요

수도회 통해 강조된 단순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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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 발행 [1494호]


문 : 중세에 가톨릭 신앙은 어떠했나요

답 : 중세에는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새로운 수도회들이 많이 설립됐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 더 배우고 싶어 했으며, 예수님을 닮고 싶어 했지요. 평신도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문 : 어떤 수도원과 수도자가 있었나요

답 : 10세기에 베네딕도회의 클뤼니 대수도원이 설립됐습니다. 이 대수도원은 교황 직할 수도원으로 신앙, 문화, 예술을 쇄신하는 중심지가 됐습니다. 많은 수도원이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에 동참했고, 1200곳이 넘는 수도원이 클뤼니 수도원에 속했습니다.

12세기에는 새로운 수도회가 많이 설립돼 그리스도교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토회 수사들은 베네딕도회가 원래 추구하던 단순함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클뤼니 수도원의 화려함에 반발했지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 같은 지도자들의 영향 아래 시토회 수사들은 기도하고, 농지 노동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베네딕도회의 모토를 반영했습니다.

13세기에는 탁발 수도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프란치스코 회원들과 도미니코 회원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문 : 신앙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답 : 13세기에는 신앙 공부에 대한 열기가 다시 타올랐습니다. 이 열풍에는 도미니코회원들과 프란치스코회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들은 논제를 이성적으로 논쟁하며 신앙 지식을 심화하는 게 신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세에 시작된 이러한 진리 탐구를 스콜라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같은 대사상가들은 교회 교부들의 저술들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저작은 많은 이가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최초의 대학들이 세워졌습니다. 1215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파리대학을 첫 교회 대학으로 인정했습니다. 이후 옥스퍼드대학, 볼로냐대학, 살라망카대학이 생겨났습니다. 1450년경, 유럽에는 50개가 넘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문 : 새로운 신심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답 : 14세기에 현재의 베네룩스 3국(벨기에ㆍ네덜란드ㆍ룩셈부르크) 지역에서는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새로운 신심 운동)’라는 영적 운동이 생겨났습니다. 데벤터르의 헤이르트 흐로테는 ‘공동생활 형제회’라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공동체 회원은 수도 서원을 하지 않은 평신도였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기도하고 단순하게 그리스도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새로운 신심은 네덜란드 철학자 에라스무스, 화가 히에로니무스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은 이 전통에서 나온 책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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