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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6)“엄마는 왜 안 된다는 말부터 해?”

[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6)“엄마는 왜 안 된다는 말부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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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발행 [1492호]



“엄마, 코딱지를 파서 상추에 넣어서 된장에 찍어서 먹어. 그거를 쪄서 국에 넣어서 김치랑 먹어. 어때, 엄마?”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두 아이의 밥을 먹인 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만 두 돌이 안 된 둘째 아이의 서투른 숟가락질은 늘 허공으로 향하는데, 그날따라 식탁 바닥으로 추락한 반찬과 밥풀이 나뒹굴고 있었다.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다시 말할게. 엄마, 코딱지를 파서 상추에 넣어서 된장에 찍어서 먹어. 그거를 쪄서 국에 넣어서 김치랑 먹어. 어때, 엄마?”

“너무 재밌다.”

“엄마, 환하게 웃어야지! 소리 내서 웃어. 다시! 코딱지를 파서 상추에 넣어서…”

나는 안면 근육이 마비된 엄마가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반응이라는 것은 늘 나의 최고치를 요구한다. 나는 참고 또 참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다고 생각한 마지막 종점에서 다시 모든 게 무너지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출발선에 선다. 그렇게 코딱지 반응을 겨우 통과했는데 아이가 다시 주문한다.

“엄마, 내가 지금 너무 졸리고 피곤한데 일곱 마리 아기염소 만화 딱 한 번만 보면 안 될까?”

졸리고 피곤하다는 아이 표정이 밝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종아리뼈에 금이 간 둘째가 깁스를 한 채 식탁 위에 올라가고 있다. 한 손으로 둘째를 저지한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밥을 떠먹고 있었다. 만화를 보여달라는 첫째 지성이의 요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친절하지 않았고,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안 된다는 말을 세 번 연발했다. 아이가 운다.

“‘지성이가 아기염소 만화가 보고 싶었구나. 왜 보고 싶어?’ 이렇게 먼저 말해야지. 왜 안 된다는 말부터 해? 엉엉. 왜 화부터 내? 엉엉.”

조그마한 아이의 보드라운 볼 위로 두 줄기의 눈물이 쏟아진다. 기분이 좋을 때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줬던 문장들이 저 작은 가슴에 저장돼 있다가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 이유를 묻지 않고 화부터 낸다는 말, 내가 어른들에게 가져온 불만이 아니었던가.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타인을 품에 안기 위해 나 자신을 먼저 안아줘야 함을 아이는 온몸으로 알려줬다. 유치원생 아이를 통해 말하는 법을 처음부터 배운다.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있다. 아이는 내 욕구와 감정에 충실한 채 아이와 행복한 관계를 맺는 법을 생각하게 한다. 30년 넘게 살면서 갖게 된 낯설고 무거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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