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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다… 어느새 바다같은 주님 은총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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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발행 [1492호]


월급날은 매월 28일. 통장에 찍히는 돈이라곤 100만 원 남짓. ‘물가 비싼 일본에서 어찌 살란 말인가!’ 차디찬 사제관 바닥에 앉아 그는 ‘생존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대형마트에서 반값 할인하는 도시락을 두 개 사두면 다음날 두 끼는 해결될 터. ‘아침은 걸러가며 어디 한 번 버텨보자.’

배고픈 아르바이트생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2월 일본 교회에 선교사제로 파견돼 현재 오카야마현 츠야마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인 김홍석(부산교구) 신부의 우여곡절 사목 일화다. 바다 건너 일본 교회에서 사목한 지도 1년 반째. 주님을 전하는 선교사라지만, 인간적으로 힘든 때가 왜 없으랴. 1억 2000만 명 넘는 일본인 중 신자 수는 0.5%도 채 안 되는 일본 교회는 사실상 ‘현대판 신앙 불모지’다. 지금도 김 신부의 월급은 그대로지만, 결코 배고프지만은 않은 한 사제의 감동과 웃음이 섞인 사목 이야기를 신앙 에세이로 엮은 「나의 더 큰 바다」가 나왔다.

한 번 가기도 힘든 군대를 두 번 다녀와야 했던 군종사제 시절 일화부터 부끄럼 물리치고 담백하게 옮긴 청소년기 첫사랑과의 인연, 신학생 때 겪은 웃지 못할 경험 등이 김 신부의 섬세하고 탁월한 감수성 담긴 문장에 힘입어 장편소설처럼 재미있게 펼쳐진다. 월간 「생활성서」 ‘요나 신부의 서랍 속 이야기’라는 코너에 3년간 연재된 글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33편을 모은 ‘사제의 일기장’ 같은 책이다.

최근 잠시 귀국한 김 신부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텁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제가 있는 성당 마당에 잡초가 이만큼 자라서 제초작업 하느라 제 수염은 제초(?)를 못 했네요. 이 모습도 괜찮지 않나요?”

김 신부는 어릴 때부터 독특하고 엉뚱한 면모도 많았다고. 일본 여자를 만나보고 싶어 일본어를 독학했고, 신학생 때엔 5개의 전깃줄을 오선지로, 밤하늘의 별들을 음표 삼아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단다. 기록하는 것도 좋아해 별명은 ‘메모광’. 그런 그가 사제가 된 뒤 자신의 모든 재능을 하느님을 위해 쓰고 있는 이야기가 책에 줄줄이 펼쳐진다.

“일본 교회는 참 재미있는 곳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면 신자도 아닌 분들이 예수상 앞에 돈을 놓고 가기도 하고요. ‘나 오늘부로 신자 안 하기로 했다’면서 갖고 있던 성물과 성화를 성당에 한가득 내놓고 가는 분도 계세요. 비신자 남편이 아내가 성당 가는 걸 너무 싫어해서 1년에 딱 한 번만 성당 가게 해주는데, 글쎄 한국인 신부가 왔다고 오신 거 있죠. 차로 2시간 거리에 사는 두 분은 매일 새벽 미사를 절대 안 빠지세요. 그분들만 아니면 평일 미사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그분들 차 놓치면 제가 모셔다 드리죠. 하하~”

첫사랑 카타리나의 혼인성사를 주례해주고, 군종사제로 입대 전 사관학교 훈련병 때 화장실 변기를 제대 삼아 혼자 남몰래 미사를 봉헌한 일, 부제 시절 황철수 주교서품식 때 김수환 추기경 곁에서 복사를 서며 땀을 뻘뻘 흘리다 추기경에게 들킨 사연, 어떤 일본인이 성당에 싸놓은 똥을 홀로 치운 일화 등엔 모두 잔잔한 감동과 웃음이 뒤섞여 있다.

“저희 본당 교적 신자 수가 200명인데, 그분들 주소를 보고 ‘어린양 찾아가는 사목’을 하고 있어요. 문전박대 당하는 일도 많죠. 그럼에도 성당엔 안 나와도 주보를 보며 우울증 치유하신 분, 홀로 이불 속에서 남편 몰래 묵주기도 하는 분도 계세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선교’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지요. 제가 해온 일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면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겠죠? 기도와 나눔이 필요한 분들은 책에 있는 제 이메일로 문의 주시면 답장 드릴게요!”

글·사진=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나의 더 큰 바다

김홍석 지음 / 마리아 쥬리아나 타타라 그림 / 생활성서사 /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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