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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9) 자백 & 귀취도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9) 자백 & 귀취도

은유 속에 담긴 시대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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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발행 [1490호]
▲ 영화 ‘자백’ 포스터.

▲ 나빙(1733-1799) 작 ‘귀취도(鬼趣圖)’의 한 부분.



시장은 수요에 반응한다. 영화 시장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누가 쉽게 이윤을 포기하고 손해를 자청하겠는가. 특히 왜곡된 현실이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탐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도, 판타지 같은 흥행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래저래 개봉관을 찾고 영화를 보기 도 쉽지 않다. 2016년 개봉한 탐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이 영화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뤘다. MBC 프로그램 ‘PD수첩’의 PD로 우리에게 친숙한 최승호 감독이 40개월에 걸쳐 한국과 중국, 일본, 태국 등을 넘나들며 오랜 추적 끝에 만든 영화다. 이 사건은 2015년 10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다.

2013년 1월 국정원은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한다. 유씨는 탈북한 북한 화교 출신으로 당시 서울시 공무원이었다. 국정원이 유씨가 간첩이라고 내놓은 증거는 동생 유가려씨의 자백이었다. 2012년 10월 30일, 오빠의 천신만고 노력 끝에 제주공항에 도착한 동생은 곧바로 국정원에 불법 구금당하고, 이후 ‘오빠 유우성은 간첩’이라고 허위 진술한 것이다.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국정원이 유씨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국정원은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 중국 정부의 공문서를 날조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2014년 2월 주한 중국대사관은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 3건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법원에 회신한다. 이렇듯 간첩 사건은 조작됐다.

억울하고 비통한 취재 과정에서 탐사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순간 다급한 목소리로 변한다. 바로 사건의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만났을 때였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한 말씀만 해주세요,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잖아요.” 호소에 가까운 감독의 질문에 카메라를 피하는 원 전 원장의 공허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문득 청나라 화가 나빙(1733~1799)의 ‘귀취도(鬼趣圖)’가 떠올랐다.

‘귀취도’가 그려진 배경에는 청나라의 ‘문자옥(文字獄)’이 있다. 문자옥은 자신이 쓴 글의 문자가 통치자에게 거슬려 죄를 뒤집어쓰고 가혹하게 옥고를 치른 사건을 말한다. 이는 공포정치의 한 수단으로 만주족에 저항하는 한족 지식인들을 완전히 뿌리를 뽑는 데 쓰였다. 나빙은 귀신의 음산함을 표현하는 데 일가를 이뤘는데, 그의 그림 속 귀신은 탐관오리를 비유한 것. 당시 지식인들은 이러한 풍자를 크게 환영했다.

나빙이 공허한 환상을 빌어 자신이 사는 시대의 어둠을 귀신으로 묘사했다면, 다큐멘터리 ‘자백’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피해자의 고통의 현실을 담아냈다. 결코, 반복되면 안 된다고. 누구든 당할 수 있다고. 그래서 기억해야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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