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이도행·윤성규 신부
“죽음, 두려워만 하기보다 조금 더 사랑하는 삶 사세요”
2018. 11. 11발행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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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경색으로 언어를 잃어버렸던 이도행 신부(오른쪽)와 혈액암을 극복하고 사제 생활을 하고 있는 윤성규 신부. 이힘 기자



죽음 너머의 삶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이다. 이미 누군가는 떠났고, 곧 누군가가 떠난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진리다. 평범한 일상, 뇌경색과 혈액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와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두 사제를 만났다. ‘일상’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다시 돌려받은 이들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제가 제대에 올라 가장 먼저 바치는 성호경. 평소와 같이 두 입술이 부딪히며 성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야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몇 번이나 성호를 다시 그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단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9년 전, 서울 대치2동성당. 새벽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대에 오른 이도행(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사무부국장) 신부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언어 중추가 손상돼 말과 언어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의식은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미사 봉헌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불가능했다. 위로의 문자가 오면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엉뚱한 자판만 두드렸다. 언어 중추가 망가진 이 신부에게 하느님에 대한 원망, 사제직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윤성규(안동교구 성소 담당) 신부는 2000년 혈액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일반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짝사랑하던 사람도 있었다. 엔지니어로 성공하는 삶을 꿈꿨다.

척추에 퍼지고 있던 암세포로 통증은 심해졌고,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걷지 못해 누워 지냈다. 어머니가 늙은 몸으로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서울성모병원 암 병동에 입원한 그는 자연스럽게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기도, 병상에 찾아와 기도해주는 사제와 수녀,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치료가 어려워지자 원목 담당 신부와 수녀는 윤 신부의 부모가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수확한 사과를 병원에서 팔아줬다.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그들 삶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내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타인을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

윤 신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기 전 대세를 받고, 이듬해인 2001년 보례를 받고 퇴원했다. 사제 성소의 부르심을 받은 그는 2006년 안동교구 소속으로 대구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서울성모병원에서 환우들과 뜨거운 첫 미사를 봉헌했다.



2018년 11월 1일, 낙엽이 수북이 쌓인 명동대성당 들머리를 거닐며 두 사제가 마주 보며 웃는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가나다부터 다시 한글을 배운 이도행 신부의 말은 느려졌고, 발음은 또렷해졌다. 매일 봉헌하는 미사는 항상 긴장감 넘치고 새롭다.

“이 미사가 항상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미사 때 말을 못할 수도 있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아’ 해봅니다. 목소리가 나오는지. 소리가 나오면 오늘 하루도 감사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신부는 낙엽을 밟으며 지난 사제의 삶을 회고했다.

“아프기 전에는 어깨에 날개를 달고, 신나게 퍼덕거리며 살았죠. 투병생활 전에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을 정도로 실행력이 강했습니다. 15분에 하나씩 뭔가를 계획하고, 확인하고…. 성과를 내야만 훌륭한 사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프고 나서, 일보다는 사람, 사람보다는 사랑함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신부는 “아프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미사와 강론, 성사를 집행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예비신자들을 만나는 일이었다”며 “사제로 살면서 성과보다는 존재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성소 담당 사제로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는 윤성규 신부의 마음에는 자원봉사자의 말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신의 차량으로 병원에서 경북 영주 집까지 데려다 준 봉사자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그분은 ‘나에게 갚지 말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빠져나온 두 신부는 공통된 말을 꺼냈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진리이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갑자기 오지 않으며, 현세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고 삶에서 만나는 사람을 조금 더 사랑한다면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윤 신부는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삶을 따라 살고 싶었기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이 신부는 “이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과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죽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신자이든 아니든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죽음을 너머 영원의 삶과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알아보기

보례=세례성사나 혼인성사 등을 거행했을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는 예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죽을 위험이 있는 자가 죽음에 임박했거나 사제가 없을 때 대세(代洗)를 받았을 경우, 병자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면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예식을 보충하는 예식을 한다. 이를 통해 정식 성사와 같은 효과를 얻는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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