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가깝고도 먼 중국 가톨릭 Q &A] (3)
바티칸과 중국 대화 속도, 왜 ‘거북이 걸음’인가
2018. 11. 04발행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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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과 중국이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은 것은 1980년대부터다.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을 선언하고 종교 활동에 다소 숨통을 터주는 것을 보고 교황청이 먼저 다가갔다.

하지만 대화 진척 속도는 거북이걸음보다 느리다. 40년 가까운 대화의 가장 굵직한 성과가 지난달 발표된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 서명이다.

그동안 대화는 여러 번 중단됐다. 특히 대만 주교회의 청원에 따라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중국 순교자 120위를 성인으로 선포했을 때는 분위기가 험악했다. 중국 정부는 “그들은 서양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하고 등을 돌렸다.

중국과의 대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중국에는 국가-종교 관계에 대한 고유한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봉건 왕조시대에 황제는 ‘천자(天子)’로 통했다.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인 천제(天帝)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황제는 하늘이 내린 신성한 존재이기에 백성은 모두 복종해야 했다. 이른바 신권통치다.

16세기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이 번번이 벽에 부닥친 것이 이 천자 사상이다. 중국인에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이해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때로는 백성을 속여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오해를 받아 박해를 받았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행사하는 절대 권력은 사실상 과거 황제들이 행사했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정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종교는 국가 통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중국 공산당에게 정교분리, 즉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마태 22, 21 참조)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것도 황제의 것이다.

중국이 바티칸과의 수교에 미온적인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의 것’(교회)이 ‘황제의 것’(공산당이 주도하는 지배 체제와 사회 질서)을 어지럽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교황청은 그런 우려는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고 계속 설득 중이다. 주교 임명권만 하더라도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이것은 국가 내부의 사안에 부당하게 어떤 권리를 주장하거나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권한의 문제가 아니다”(2007년 중국 교회에 보내는 서한)라고 설득했다.

이러한 인내와 설득의 열매가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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