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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나 좀 살려주세요”

유승원 신부 한국중독연구재단(KARF) 카프성모병원 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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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발행 [1487호]


참 이상하다. 내가 만약 물에 빠진다면 무조건 살려달라고 외칠 것이다. 발버둥 치다가 벗겨진 신발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을 테고, 떠내려가는 보따리를 나보다 먼저 건져 달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살고 봐야 할 일이니. 그러니 더더욱 이상한 일이다. 죽을 병에 걸렸다고 치자. 의사를 만나면 뭐라고 할 텐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겠는가.

중독이 무서운 이유는 그 덫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고체계의 왜곡과 성격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에 있다.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하기보다 중독자도 아닌 의사가 어떻게 중독을 이해하고 치료하겠느냐 따져 묻는다.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암 환자는 암에 걸린 의사만이 치료가 가능한 것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치료를 방해할 만한 이유와 그럴싸한 핑계를 찾는다. 무엇 때문일까. 이미 중독 물질에 노출되어 독에 길들여진 뇌가 어떡해서든지 중독 물질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여, 사고도 왜곡되고 성격 또한 변화한다.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환자를 지켜보는 이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최근에 알코올 문제로 재입원한 환자가 급하게 면담을 요청해 방문했다. 20년 이상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치료 방법과 병원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니 병동 생활은 하겠으나 치료 프로그램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질문에는 질문으로 응답하는 수밖에. 그럼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치료진을 신뢰하고 배운 대로 생활해보았느냐고 반문했다. 떨궈지는 고개가 안쓰러울 뿐.

세상 그 어떤 치료자도 환자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험한 풍랑이 칠 때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마태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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