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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기 복자의 거주지와 순교 터 고증 밝혀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 발표회, 성미술 보존의 중요성도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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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발행 [1485호]


1798년 순교한 이도기(바오로) 복자의 거주지와 신앙 증거 터, 순교 터가 고증됐다.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기진 박사는 6일 한국교회사연구소 제197회 연구 발표회에서 “이도기 복자는 1786년 무렵 청양 수단리(현 충남 청양군 남양면 신왕1리)에서 세례를 받았고, 1797년 7월 31일 정산의 비신자 옹기촌에서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도기가 체포된 옹기촌은 정산 관아에서 하룻길이 넘는 적곡면(현 장평면) 낙지리 점촌”이라고 덧붙였다.

이도기 복자는 1798년 7월 24일 매 맞아 순교했다. 체포에서 순교까지 약 1년 동안 낙지리 점촌 집에서 1차례, 옹기촌 인근 동쪽 숲에서 1차례, 정산 동헌에서 8~9차례, 정산 장터에서 3차례, 정산 옥과 옥거리에서 고문과 조리돌림을 당했다.

차 박사는 “이도기 복자의 신앙 증거 터인 옛 정산 동헌은 지금의 정산면사무소(정산면 서정리 496-1) 자리, 정산현 옥은 서정리 120번지이며, 현 서정 3~5길 일대 골목길은 모두 옥거리였다”고 밝혔다. 또 “조리돌림을 당한 치성 장터는 정산면 역촌리 139~144번지를 거쳐 163에 이르는 장소로 현재 밭으로 돼 있다”고 고증했다.

정수경(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는 1954년 성모성년을 맞아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개최된 한국 최초의 성미술 전시회 출품작을 찾아내는 과정을 소개하며 성미술 작품의 관리와 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

주교회의 평신도기금운영위원회의 명도회 장학금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으로 진행한 ‘1954년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연구’에서 정 교수는 “작가 23명의 작품 31점이 출품된 이 전람회는 서양화, 한국화, 조각, 공예, 건축 등 교회 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로 한국 가톨릭 교회 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정 교수는 “출품 작품 모두 교회에 기증됐으나 그 행방을 알 수 없다가 최근 5점을 서울대교구 주교관과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등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며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의 추가 발굴과 훼손 상태가 심각한 당시 출품작의 복원 보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약종의 「주교요지」에서 불교비판 담론이 갖는 함의’를 주제 발표한 신주현(연세대 강사) 박사는 “정약종은 ‘보유역불론’(補儒易佛論)을 바탕으로 윤회설과 부처설 등을 비판하지만,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등 한문서학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당시 조선 사회의 일반 민간의 눈높이에 맞춘 독창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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