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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과 예수님 마음에 모시는...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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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의 유래와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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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발행 [1485호]
▲ 묵주기도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이룩한 놀라운 사건을 묵상하는 기도다. 그림은 로렌초 로토 작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1539년, 산니콜로성당, 이탈리아 친골리.



10월, 묵주기도성월이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대 교회에서 시작됐다. 묵주기도는 초대 교회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형장에 끌려 나갈 때 썼던 장미관을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친 데서 유래했다. 묵주기도를 일컫는 ‘로사리오’는 라틴어로 ‘장미 꽃다발’이라는 뜻이다.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을 50, 100편 또는 150편씩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 횟수를 헤아렸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 수만큼 바쳤다. 열매나 구슬 150개를 노끈이나 가는 줄에 꿰어 사용한 관습이 묵주기도를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묵주기도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 건 13세기께부터다. 당시 알비파라는 이단 세력이 교회를 위협하자, 성 도미니코(1170~1221)는 묵주기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고, 이단 세력이 점차 축소됐다. 이 시기에 처음 ‘마리아의 환희에 대한 묵상’을 묵주기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는 15세기에 등장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가 1464년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를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른 환희ㆍ고통ㆍ영광 등 세 가지로 나눴고, 15세기 말께에는 15단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가 추가된 것은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면서다. 빛의 신비는 그리스도 공생활의 주요 신비를 묵상한다.

묵주기도 신심이 전파된 것은 1830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호소하면서다. 성모 마리아는 1830년 파리에서 발현했으며, 1858년 루르드에서 묵주를 가지고 나타나 베르나데트(1844~1879)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줬다.

10월을 묵주기도성월로 선포한 사람은 레오 13세 교황(1810~1903)이다. 10월을 묵주기도성월로 정한 것은 승리의 성모 축일이 10월 7일이어서다. 이날을 축일로 정한 일화가 있다. 1571년 그리스도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와 맞선 큰 전투가 코린토 인근 레판토 만에서 벌어졌다. 레판토 해전이라 불리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 함대가 로마에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 비오 5세 교황이 조직한 그리스도교 연합군이 고전하자 교황은 교황청에 있는 성직자들을 불러 승리를 기원하는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스도교 군대가 대승을 거뒀고, 교황은 묵주기도를 바친 이 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제정했다. 현재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을 바꾸어 지낸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3년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다. 비오 10세 교황도 “묵주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도 없다”면서 “묵주기도를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17년 파티마에서 6차례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묵주기도를 매일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발현에서는 자신을 ‘묵주기도의 어머니’라고 선언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묵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이며 “가장 순수한 기도”라고 했다.(46항)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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