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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4) 영웅본색 & 신의 사랑을 위하여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4) 영웅본색 & 신의 사랑을 위하여

허무주의에 숨겨진 자유와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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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발행 [1485호]
▲ 영화 ‘영웅본색’ 포스터.

▲ 데미안 허스트 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



동네 비디오 가게에 비치된 대기자 노트에 이름을 적고 대여 순번을 애타게 기다린 적이 있다. 지나간 90년대 이야기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영화 전문채널이나 명절 때 보게 되는 해묵은 홍콩 누아르 영화를 기다렸다. 그중에서도 1986년 개봉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은 볼 때마다 특별하다.

영화는 반환을 앞둔 홍콩 시민의 세기말적 허무주의나 무정부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가족애와 뒷골목 의형제들의 의리를 신파조로 풀어낸다. 배신과 원한, 복수라는 중국 무협소설의 단골 소재이자 뻔한 사연이다. 그러나 선악 대결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도 무릅쓰는 극적인 희생이 시공을 넘어 소시민의 심금을 울린다.

아호(적룡)와 소마(주윤발)는 암흑가 의형제다. 경찰이 된 남동생 아걸(장국영)과 병든 아버지를 위해 하루빨리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아호.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손을 씻으려 하지만 부하의 배신으로 경찰에 붙잡히고 그사이 아버지도 잃는다. 아호의 복수를 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고 절름발이가 된 소마. 하루하루 거리에서 날품을 팔며 때를 기다린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택시 운전사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아호는 함께 복수하자는 의형제 소마의 청도 거절한다. 하지만 동생 아걸의 일에 아호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정의를 지키기 위한 목숨 건 싸움을 벌인다. 선글라스에 성냥개비, 롱코트에 쌍권총을 숨긴 소마가 위조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태우는 모습. 그 모습이 특히 멋지게 남았다.

홍콩 누아르 영화가 보여준 허무는 17세기 네덜란드 레이덴이라는 상업도시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세속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바니타스 정물화. 윤리 기준이 엄격했던 칼뱅주의 신학의 중심지였던 레이덴에서 신흥 부자들은 죽음을 성찰하는 주제의 정물화를 수집하면서 자신들이 이룬 부를 고귀하게 포장하고 과시했다.

백골에 백도금을 하고 다이아몬드를 빼곡히 박아 95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돼 유명해진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이는 영국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데미안 허스트(1965~)가 바니타스 정물화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허무와 사치, 죽음을 표방한다. 백골과 다이아몬드, 950억 원, 여기에 신의 사랑이라는 제목은 아이러니할 뿐이다.

영화 ‘영웅본색’과 같은 홍콩 누아르는 유치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감동을 선사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충실하게 살아도 얼마나 허전하고 허무한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잠시나마 기대고 싶은 걸까? 가끔은 허무 속 즐거움도 좋다. 이런 점이 자유롭게 여러 의미를 상징하고 표방하는 현대 미술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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