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목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시력 잃어 더 캄캄한 고시원 생활
녹내장으로 왼쪽 눈 실명한 김안성씨 IMF로 빚더미 오르고 가족과 헤어져 10년 동안 좁은 방 한칸에서 생활해
2018. 10. 14발행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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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안성씨의 방은 10년 동안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불어난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다. 본당 빈첸시오회장 조춘옥씨가 김씨와 대화하고 있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 이곳에서 김안성(75, 마르첼리노, 서울 녹번동본당)씨는 10년을 살았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10년간의 고시원 생활 동안 살림살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옷가지에 각종 약, 생필품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작 김씨에게는 다리 뻗고 누울 공간조차 없다. 그런데도 김씨는 “지금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다”는 그의 말에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체념이 묻어났다.

김씨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가정을 꾸리면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아들도 낳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서줬던 보증이 빚더미가 되어 돌아오자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IMF까지 터지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다. 김씨는 미국으로 떠났다. 낯선 곳에서 조금만 고생하면 가족들과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음식점, 정육점, 마트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맨몸으로 떠난 김씨가 합법적인 신분일 리가 없었다. 11년 동안 불법체류자로 일하면서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녹내장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왼쪽 눈이 실명됐어요. 병원만 제때 갔어도 됐을 텐데….” 한 쪽 눈이 안 보이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다달이 한국으로 보내던 생활비가 끊기자 아내와는 이혼하게 됐다.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자녀들과도 멀어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김씨는 혼자였다.

고시원 생활은 그때부터 계속됐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합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70만 원. 손바닥만 한 창문이 있는 방의 월세는 21만 원이다. 생활은 궁핍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 한 끼는 컵라면, 한 끼는 즉석밥에 인스턴트 카레로 때운다. 그나마 성당과 복지관에서 반찬을 가져다주면 제대로 식사를 한다. 주위에서는 임대주택에 들어가거나 개인회생 제도로 빚을 청산해 보라고도 한다. 하지만 김씨는 “여러 번 알아보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의 세계도 고시원 방 안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유리 기자 lucia@cpbc.co.kr



▨후견인 / 조춘옥 빈첸시오 회장

서울대교구 녹번동본당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김안성 형제님은 좁고 답답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형제님이 방 한 칸의 보증금이라도 마련할 수 있게끔 독자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예금주: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김안성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14일부터 20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15)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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