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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그리스도 안에 참 평화

유승원 신부 한국중독연구재단(KARF) 카프성모병원 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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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발행 [1484호]




퇴원한 환자분께서 다녀 가셨나보다.

“신부님, 다녀갑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강○○”

힘줘 쓴 글씨가 작은 메모지 위에 남겨져 있다. 병원에서 환자와 원목 신부로 첫 인연을 맺은 후, 강 선생님은 수십 년간 미뤘던 가톨릭교회 세례를 받으셨다. 오래 묵혀 두었던 교회법적 혼인 문제도 이참에 해결하셨다. 흰 머리가 성성하게 내려앉으신 두 분의 혼배성사를 집전하면서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신의를 지키겠노라” 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두 분의 혼인 서약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오래지 않아 눈물을 흘리시며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편안하게 하느님 품에 먼저 안기셨다.

루카복음서는 제자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으로 십자가 수난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전한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평화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분께서 평화롭지 못한 이들에게 평화의 말씀을 건네신다. 그리하여 저 평화는 인간적인 번민과 세속적인 고뇌를 물리치는 근원적인 위로임을 깨닫게 된다.

중독이라는 사슬에 묶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끊어내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사제인 내가 더 건강해지고 튼튼해져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아침 새롭게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그 안에서 근원적인 평화와 위안을 얻지 않으면 내가 건네는 모든 위로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따름이지 않을까.

평화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분께서 평화의 말씀을 건네신 것처럼 원목실 한쪽 벽면, 여전히 떼지 못하는 저 메모지가 붙어 있다.



“다녀갑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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