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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기자의 엄마일기](3)엄마의 출근은 욕심이 아니다

[이지혜기자의 엄마일기](3)엄마의 출근은 욕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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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3 발행 [1483호]



남편이 두 아들을 앞뒤로 업고 안은 채 집으로 걸어들어오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여자가 남편 옆으로 차를 천천히 몰면서 창문을 내린다.

“지성이 아빠, 힘들죠? 진짜 대단해.”

남편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는 여자는 한 마디 덧붙인다.

“지성이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퇴근 후,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애들이 복 받은 거지!”

얼마 후, 어린 시절부터 한동네에서 살았던 친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누구 엄마가 너 일 욕심 때문에 남편 육아휴직 시킨 거라고 그러더라. 내가 그 말 듣고 화가 나서 아니라고 했어.”

중화요릿집에서 탕수육 포장을 주문해놓고 이 말을 들었는데, 내 마음에 튀김옷이 붙어 탕수육처럼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요즘, 아내가 등 떠밀어서 육아휴직을 하는 남편이 어딨니?”

내 언짢은 마음은 ‘일 욕심’에 머물렀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했을 때, 아침마다 현관에서 내 옷자락을 붙들고 우는 아이들을 떼어낼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뜯어졌다. 마음속으로 사직서를 낸 게 몇 번인가?

왜 아빠의 출근은 ‘일상’인데, 엄마의 출근에는 ‘일 욕심’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을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은 아빠의 성공은 가족적 가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엄마의 성공은 여전히 ‘독한 욕심’으로 읽힌다. 일하는 엄마는 워킹맘이지만 일하는 아빠는 그냥 직장인이다.

아이는 원래 엄마가 키워왔다. 맞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공지영 소설가가 「해리」에서 언급했듯이, 원래 세상은 그래 왔다는 말은 무섭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눈을 밝게 해준다고 한다. 고통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늦게 퇴근한 다 큰 아들의 저녁밥을 차려내는 늙은 엄마의 무거운 노동이 시 한 줄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 전, 친구의 혼인성사에서 주례 사제가 강론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 가정은 엄마와 아빠라는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데, 한 기둥이 다른 기둥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건 선물이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라는 것’(은유)을 이제 나는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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