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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2) 사일런스 & 성 베로니카의 수건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42) 사일런스 & 성 베로니카의 수건

절대적 믿음으로 기꺼이 순교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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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3 발행 [1483호]
▲ 영화 ‘사일런스’ 포스터.

▲ 엘 그레코 작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



위태로운 순간, 실낱같은 희망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누구든 절망한다. ‘난 침묵에 기도하는 것인가?’ 영화 ‘사일런스’의 로드리게스 신부의 절규다. ‘기도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침묵하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묻는다. 믿는지, 의심하는지.

‘사일런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6년 영화로, 원작은 20세기 일본 문학의 최고 걸작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다. 거장 엔도 슈사쿠는 ‘신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오래된 신학적 주제를 가혹한 박해로 배교한 한 신부와 이를 믿지 못해 그를 찾아 복음을 전파하러 온 두 신부의 실화를 소재로 다뤘다.

1549년 일본 예수회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가톨릭을 전파한 후, 200여 년 동안 신자와 선교사 2만여 명이 순교했다. 17세기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지도자인 페레이라 신부는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선불교로 개종, 개명하고 일본인 아내까지 얻는다. 그리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하며 교회를 비판한다.

17세기 중반, 교황청은 선교사의 일본 파견을 허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드리게스와 가루페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현지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또 배교를 강요당한다. 신앙을 부인해야 살 수 있다.

막부는 숨은 그리스도인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다. 예수 그리스도 형상이 새겨진 부조를 밟게 하거나 십자가에 침을 뱉게 했다. 침묵하는 하느님. 로드리게스 신부가 예수님의 얼굴을 밟으려는 찰나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밟아라. 나는 너의 고통을 잘 안다. 너희와 고통을 나누기 위해 내가 이곳에 왔다.’

영화에서 물에 비친 로드리게스 신부의 모습은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 속 예수님의 형상이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검은색 배경 속 흰색 수건. 베로니카의 수건을 그린 명작들은 많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색감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 일본에 대한 감독의 첫인상은 푸른색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의 땀과 피를 닦아준 성녀 베로니카는 이름 없는 순교자다. 천국을 꿈꾸며 절대적인 믿음으로 순교를 선택한다는 건 우리 인간의 능력 밖의 일처럼 여겨진다. 마치 베로니카의 수건에 새겨진 형상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도상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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