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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저항 직면한 교황, ‘침묵’과 ‘기도’ 강조

개혁 저항 직면한 교황, ‘침묵’과 ‘기도’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 3일 아침 미사 강론 통해 밝혀, 전 주미 교황청 대사 비가노 대주교 발언과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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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발행 [1482호]
▲ ‘베드로의 후계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28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새 추기경 서임을 위한 추기경회의를 마친 후 성 베드로 동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3일 아침 미사 강론에서 ‘침묵’과 ‘기도’를 강조했다. 평범한 강론 주제 같지만, 저간의 상황을 살펴보면 두 단어에 실린 무게는 상당하다.

“오직 스캔들과 분열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응답은 침묵과 기도입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는 온유합니다. 진리는 침묵합니다.” 이날 복음은 그리스도가 나자렛 사람들의 의심과 분노에 침묵으로 대응한 이야기다.(루카 4,16-30 참조)

이날 강론은 전 주미 교황청 대사 카를로 비가노 대주교가 8월 26일 발표한 성명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비가노 대주교는 교황이 미국의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면서 퇴위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언론에 뿌렸다. 매캐릭의 추기경직 사임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 교회는 이 보도로 더 혼란에 빠졌다. 기자들이 이 성명서에 대한 입장을 묻자 교황은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 문서 안에 (진위가) 다 드러나 있다”고 대답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2년 전 정년(75세)으로 은퇴했다. 교황청은 ‘가족 중의 가족’인 전 교황청 대사의 행동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으나, 바티칸 내부에는 쓰라린 실망과 동요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명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고위 성직자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극단적 주장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로마 주재 언론들은 “비가노가 ‘폭탄’을 던졌다”며 이를 교황의 개혁 작업을 둘러싼 보수와 혁신의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교황은 이혼 후 재혼자들에게 어떻게든 영성체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부 보수 성향 성직자들이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을 들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비가노 대주교도 그중 한 명이다.

이를 보수와 혁신의 갈등으로 이해하려면 예수회 출신의 베르골료 추기경이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출된 2013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콘클라베(교황 선출회의) 참석 추기경들은 역사상 최초로 유럽이 아니라 남미에서, 교구가 아니라 예수회 출신에서 새 교황을 찾았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른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점을 예견하고 있었다. 교황은 피선 이틀 뒤인 3월 14일 선거인 추기경단과 봉헌한 미사에서 “함께 걸어가고,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일에는 많은 흔들림, 정확히 말하면 걸어가기가 아닌 다른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움직임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뒤에서 잡아당기는 움직임’은 여러 차례 노출됐다. 교황이 진취적 변화를 꾀하거나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할 때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었다. 한 예로, 지난해 교황이 지역 교회 주교들에게 전례문 번역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과정에서 경신성사성 장관 로베르 사라 추기경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졌다.

교황은 어떠한 구조적 개혁이 일어나려면 태도와 사고방식부터 개혁돼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단체와 개혁을 강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된 사람들이지만, 그 중요한 책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야심과 허영에 매수되어 부패한 이들”(2017년 12월 21일 교황청 꾸리아 훈화)을 꾸짖었을지언정, 그들을 처벌하거나 교체하지는 않았다. 사라 추기경도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교황과 미국 교회를 곤혹스럽게 하는 성직자 성추문은 적어도 25년 전에 일어난 과거사다. 그럼에도 교황은 우회로를 찾지 말고 위기를 정면 돌파하라고 주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아일랜드 주교들에게 “난관에 부닥쳐 ‘초라한 양 떼’처럼 느껴지더라도 낙담하지 마라. 시련은 쇄신의 기회”라고 말했다. 또 “정직과 성실을 통해 고통스러운 사안에 직면하기로 한” 주교들의 용기를 칭찬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다니엘 디나르도 추기경은 최근 “아물지 않은 상처는 우리에게 결정적이고 확고하게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라고 재촉한다”고 한 교황 권고를 잘 받아들이고 위기를 헤쳐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교황은 3일 강론을 마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에게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식별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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