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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35) 위대한 침묵 & 주님 탄생 예고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35) 위대한 침묵 & 주님 탄생 예고

피정처럼 청아하고 고요한 영화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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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발행 [1476호]
▲ 프라 안젤리코 작 ‘주님 탄생 예고’.

▲ 영화 ‘위대한 침묵’ 포스터.



연일 폭염이다. 무더운 날씨에 태풍마저 기다려진다. 열사병, 탈진 등 온열질환과 농수축산물 관리에 비상이다. 지치고 힘든 일상은 우리 모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이럴수록 고요한 수도원에서의 피정이 그립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멍 때리며 침묵하는 것이다.

‘위대한 침묵’은 알프스 첩첩산중 깊은 계곡에서 독일 감독 필립 그로닝이 홀로 1년 동안 자연광으로 모든 장면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수사들의 극도로 절제된 금욕의 시간을 장장 168분에 걸쳐 보여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카메라 앵글에 담긴 그랑드 샤르트뢰즈 봉쇄 수도원의 카르투지오회 수사들의 생활은 위대한 침묵 그 자체다. 허락된 수도원 내부 촬영에 비친 수사들의 생활은 정지된 듯 이어지는 시간과 자연 속에서 오직 침묵으로 일관한 엄격한 일상이다.

감독은 수도원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세상과 단절된 그곳 분위기를 잘 담아냈고, 수사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면서 촬영했다. 영화는 그저 수도자들의 담담한 묵언의 일상을 보여주기에 이렇다 할 스토리는 없다. 하지만 보는 내내 영화 속 어딘가에서 거룩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영화 말미에 시각장애인 노 수사는 “왜 사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 시력을 빼앗은 하느님께 감사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영혼에 유익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하느님은 무한히 선하시고 전능하시며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행복하다. 늘 우리 삶을 통찰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쩌면 대중영화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지루할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며 찬사를 받았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독방에서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1395~?)가 그린 성화 ‘주님 탄생 예고’가 생각났다.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신부이자 화가였던 프라 안젤리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 화가로 활동했던 그의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다. 기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정성스럽게 그림만을 그렸다는 그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해 ‘천사 같은’이라는 뜻의 ‘프라 안젤리코’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의 그림 ‘주님 탄생 예고’는 과거 도미니코회 수도원 건물이었던 산마르코 박물관에 걸려 있다. 성경에서 동정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예수님을 잉태한다는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게 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수도원 내부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에는 동정 마리아와 천사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수도원 어딘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수도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그려진 이 작품은 하느님의 침묵을 품고 있다. 영화도 그림도 피정처럼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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