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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효도계약서 쓰는 시대라니

[평화칼럼] 효도계약서 쓰는 시대라니

홍진(클라라, 사회복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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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발행 [1476호]



살아 계신 노모와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를 쓰는 시대가 됐다. 노인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효도계약서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속된말로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사회복지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런 사회가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내용은 이렇다. 현대 사회의 부모와 자식은 돈 때문에 ‘갑을 관계’에 놓이기도 하고,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로 만나기도 한다. 부모는 재산을 담보로 자식에게 효(孝)를 요구하고, 자식은 부모의 대가를 바라면서 뒷바라지해준다는 것. 그러나 효도계약서를 통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법원에는 부양료 청구 및 부양의무자 청구 사건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세계적 추세다. 물론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고 해서 크게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전체 인구 대비 노인 비율이 오르는 데 걸리는 기간이 100년 이상이 걸리는 유럽에 비해 한국은 고작 27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것이다.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은 데다, 방치되는 홀몸노인, 연고 없이 홀로 사망하는 고독사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노인 자살률이 2009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빠른 고령화 속도 탓이다.

일본은 노인 문제를 빠르게 인식하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개호(介護)보험(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실시하는 간병보험)으로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곳곳에 노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함께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물론 고령화 사회에 행복한 노후를 보장하려는 일본 정부의 정책이지만,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고 가족의 삶을 증진한다는 점에서는 눈에 띈다.

한국도 2008년부터 장기요양보험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봄 서비스 연계 등 일명 포용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법·제도적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다보니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노년층에 대한 배려와 준비는 얼마만큼 진행됐을까. 단지 선거철에만 어르신의 표심을 노리는 공약이 아닌, 최소한으로 지켜져야 할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이 침해당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교황청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노출돼 있는 노인들의 불평등에 대해 인지하고 노인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각별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난 2017년 12월 기도 지향을 담은 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조부모를 돌보지 않고 잘 대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행을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셨다. 부모만이 하느님의 부성과 모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표지로 부모 덕분에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도 이제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 문화와 함께 정부의 돌봄 서비스 체계를 현실에 맞게 시급히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노인과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라는 황당하면서도 생소한 말을 꺼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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