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1)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루카 20,20-26)
하느님 뜻 거스른 황제의 ‘데나리온’은 없다
2018. 07. 08발행 [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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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살펴봤듯이 포도원 소작원의 비유(루카 20,9-19)는 예수님을 배척하려는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을 두고 한 비유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에 이들은 당장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했지만 백성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했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20,19) 율법학자와 수석 사제들은 기회를 엿보던 끝에 다시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내용을 살펴봅니다.

▲ 카이사르 시대의 데나리온 앞면과 뒷면.




이들은 이제 선량한 사람처럼 꾸민 앞잡이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하게 합니다.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빌미로 삼아 “예수님을 직권과 사법권을 가진 총독에 넘기려는 것”(20,20)이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선량한 사람처럼 꾸민 앞잡이들은 누구일까요? 루카복음에서는 누구인지가 확인되지 않지만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복음(22,16)과 마르코복음(12,13)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엄격히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이들이고, 헤로데 당원은 북부 갈릴래아 지방과 요르단강 동쪽 페래아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재위 기원 후 4~39)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충성하는 이들입니다.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들이 헤로데 당원을 동원한 것은 예수님이 헤로데가 통치하는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학자들은 풀이하기도 합니다.

이 앞잡이들이 예수님께 말을 건네는데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올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가리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20,21) 여기까지 읽으면 이들의 말투는 대단히 공손해 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세 가지 면에서 예수님을 칭송합니다. 올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신다는 것,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해오신 일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저희가 황제에게 조세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20,22) 이 말에 올가미가 들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던 열혈당원 같은 이들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조세를 내지 말도록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황제에게 조세를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대답하면 이들 열혈당원은 물론이고 독립을 바라는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과 척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합당하지 않다고 대답하면, 로마의 지배를 받는 기성 정치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됩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든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아시고 다른 식으로 대응하십니다. 질문에 직접 대답하시지 않고 오히려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여라. 누구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느냐?” 하고 반문하시지요. 그러자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20,23-24)

데나리온은 예수님 시대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던 은화로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혹은 농민의 하루 품삯에 해당했습니다. 이 은화는 앞면에 황제의 흉상과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신격화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Ti. Caesar Vivi Aug. F. Augustus)’라는 직함이, 뒷면에는 평화의 여신으로 앉아 있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어머니 리비아(Livia)의 상과 황제를 가리키는 ‘대사제(Pontifex Maximus)’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앞잡이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제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이 말씀에 앞잡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빌미로 예수님을 붙잡아 총독에게 넘기려고 했던 처음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예수님의 답변에 경탄하며 물러섰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20,25-26)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이 답변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은 말 그대로 황제에게 바쳐야 할 것이 있으면 황제에게 바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국가에 조세를 내야 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황제는 하느님과 동격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로마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하느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황제는 자신을 신처럼 못할 게 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뜻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받들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황제의 권위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황제는 하느님 뜻에 맞게 권위를 올바로 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황제 또한 하느님께 예속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이들의 계획을 물거품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유신 독재와 신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70~80년대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두고 ‘예수도 정교 분리를 이야기했는데 왜 자꾸 교회가 정치 문제에 개입하느냐’는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 말씀의 취지를 크게 왜곡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교회는 국가의 정당한 권위 행사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협력하고 따릅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권력을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사할 때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기본권을 유린할 때에 교회는 나서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바로잡도록 촉구합니다.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고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권력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 때 교회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는 특정 정파를 편들어 정권을 잡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성의 전문가인 교회는 정치 구조와 정치인들이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고 윤리와 도덕성을 고양하도록 촉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치 구조를 만들고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과제이자 책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정치 생활에도 적극 참여할 것을 독려합니다. 현세 질서를 하느님 뜻에 더욱 맞도록 개선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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