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30) 빌리 엘리어트 & 돌아온 탕자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30) 빌리 엘리어트 & 돌아온 탕자

야유와 조롱도 막을 수 없는 사랑

Home > 문화출판 >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2018.07.01 발행 [1471호]
▲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작 ‘돌아온 탕자’.

▲ 영화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



오랫동안 부성애라는 단어는 모성애에 비해 자주 쓰이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두드러진 반면 가정을 떠받치려 노력하는 아버지의 희생은 가려진 측면이 많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어찌 작겠는가! 작년에 재개봉한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는 어린 아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싸우고 희생하는 아버지가 있다.

영화 속 배경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되는 1984~5년 북부 광산지대 광부들의 대파업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위해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파업에서 이탈하고, 노조 간부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큰아들이 그 길을 가로막자 어린 동생에게 이곳을 떠날 기회를 주자고 호소한다.

11살 소년 빌리 엘리어트. 엄마를 잃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아버지, 형과 함께 살고 있다. 언젠간 아버지나 형처럼 광부가 될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어린 빌리가 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주말 권투반에 등록시킨다. 하지만 권투에 소질이 없던 빌리는 그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발레 강사 윌킨스 부인으로부터 발레 개인교습을 받는다.

아버지의 귀에 빌리가 발레를 한다는 소문이 들어갔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권투장에 보낸 아들이 여자들이나 하는 발레라니. 아버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빌리는 말로 아버지를 설득하는 대신, 참았던 분노를 춤으로 토해낸다. 광부로서 감정 표현이 서툰 아빠는 빌리의 춤에 충격을 받고 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소년 빌리가 침대 위를 아무렇게나 뛰어오르던 영화의 첫 장면과 이어지듯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백조의 호수’의 백조가 되어 무대 위를 힘차게 뛰어오른다. 이미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는 객석에 앉아 무대 위 빌리와 호흡한다. 아버지가 매일 지하 갱도로 내려갈 때마다 아들의 비상도 조금씩 다듬어졌던 것이다.

아버지의 희생은 아들이 예술가로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예술가 자신의 노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불러온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1606~1669)이 말년에 즐겨 그렸던 성화 ‘돌아온 탕자’ 속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이 더 깊이 다가온다.

렘브란트의 아버지와 조상은 제분업에 종사했다. 어릴 적 가난했지만 학구열이 높은 부모의 배려로 라틴어 학교를 거쳐 대학에 등록하나 얼마 다니지 않는다. 화가들에게 그림을 배운 그는 1626년부터 독자적인 작업실을 운영하며 직업화가로서 승승장구한다. 말년에 찾아온 경제적 고통은 화가로서의 그를 더욱더 성숙시켰다.

‘돌아온 탕자’는 루카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그린 것이다. 미리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한 아들이 절망 속에서 떠올린 것은 아버지였다.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는 순간을 이처럼 깊이 있게 표현한 그림은 없다. 그림 속 큰아들의 불만과 하인들의 조롱 섞인 눈빛은 빌리의 아버지를 배신자라고 야유하던 노조 동료들을 연상시킨다. 자비는 하느님 아버지의 외로운 사랑이다.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아들이 소중하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